필리핀 세부여행(1/3)
추석 한달 반전쯤,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추석 때 이틀만 연차휴가를 쓰면 최장 9일의 시간이 되는데, 마침 인도-네팔을 잇는 성지순례를 다녀오면 어떻겠냐는 거다. 모두투어에서 진행하는 패키지여행으로, 추석 직전에 떠나는 똑같은 여정에 비해 130만원이나 싼 상품(160만원)이란다. 네팔에 머무는 1년 동안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는 두번 가 봤지만, 인도쪽은 기회가 닿질 않아 아쉬움이 있던 차에 그러자고 했다. 집사람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지만, 몇년전에 족저근막염을 앓고 나서는 먼거리를 걷는 것을 힘들어 하는 걸 알기에 같이 가지 않을 경우 이번 추석에는 편히 쉬라고 당부해 놨다.
그런데, 우리 패키지의 최소출발인원(4명)이 차질 않는 거다. 더군다나 미얀마 출장일정이 당초 예상보다 조금 더 뒤로 미뤄지는 바람에 나도 출발확약을 하기가 어려워져서<인도여행을 하려면 최소 1주일전에 비자신청을 해야 한다고 함> 결국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9월초에 미얀마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 간단한 보고서를 낸 다음, '그럼 추석연휴 때 뭘 하지?' 하다가 인터넷에 '긴급모객'이라 입력했더니 세부행 왕복항공권(3박 5일 일정)이 제스타항공의 경우 99,000원(유류할증료 161,000원 별도), 하나투어에서 진행하는 출발확약이 된 상품이 249,000원(유류할증료 131,000원 별도-역시 제스타항공이고 같은 일정인데 왜 차이가 나지?)에 검색되었다.
부랴부랴 항공권(판매가격에다 유류할증료와 발권수수료 20,000원 까지 더하니 1인당 28만원이다) 샀을 경우 현지에서 음식/숙소와 함께 각종 투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다가, 현지의 한국인 투어회사로부터 '최고급 리조트인 샹그릴라에 3일간 묵으면서 호핑투어와 시내투어 그리고 공항까지 왕복 차량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100만원 조금 더 넘는 구두 견적서'를 받았다. 그렇다면 1인당 80만원은 훌쩍 넘어가는 가격이 되는 거지만, 그래도 매력적이다(옵션쇼핑 등이 없으니 편안한 휴식 가능).
집 사람과 상의하니 너무 서두룬다고 하면서도(싫다는 소릴 하지 않았다), 본인이 원하던 대로 멀지 않은 휴양지로 가게 되니 그냥 패키지로 다니자 한다. 현지에서 원하는 옵션투어를 한두개 하면서 여러 사람과 같이 다니는 게 좋다 하면서 말이다. 해서 하나투어의 이른바 저가패키지*를 이용하기로 결정을 하고 필리핀 현지 여행사에는 그렇게 이해를 구했다. 내가 합류한 상품에는 이미 4명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총 6명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같은 일정의 세부패키지가 저가-고가로 나뉘는 결정적인 이유는 숙소와 음식의 질 때문이다. 숙소에 대해서는 신혼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니 방이 깨끗하고 수영장만 있으면 오케이다. 아침식사야 어차피 부페식이 아니면 간단한 아메리칸 스타일일 것이니 그것도 문제없다. 더군다나 다른 외부 식사는 한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집사람에게도 안성맞춤이다.
* 1인당 38만원, 가이드팁 30달러 별도, 하루일정의 까오비얀섬 호핑투어 포함. 숙소는 Nature Park. 하나투어에 숙소변경을 물었더니 샹그릴라리조트는 1인당 100만원 추가(크림슨리조트는 80만원 추가)라는 답을 들었다.
패키지 여행은 현지에서 가이드를 만나 차를 타기 전까지는 가이드가 현지사정을 잘 알고 있을지 또 성격은 괜찮을지, 동행하는 사람들은 까탈스럽지 않을지, 가이드가 투어에는 관심이 없고 옵션상품 판매(다 알다시피 패키지여행의 옵션상품가는 시중가보다 상당히 높다)나 쇼핑센터 방문에만 신경을 쓸지 등등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떠나는 것이므로 다소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장점은 우선 가격이 착하다는 것(물론 제시하는 옵션을 왕창 하다보면 같은 일정의 고가 패키지보다 더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잠자리나 먹을 것 그리고 이동수단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저 가자고 하면 가고, 쉬자고 하면 쉬고, 놀라고 하면 놀면 된다. 이런 휴양지의 활동에 필요한 팁을 조금씩 줘가면서 말이다.
시간이 많지 않아 세부에서 할 일에 대해 아주 간단히 검색을 한 후, 최소한으로 짐을 꾸려 인천공항으로 갔다. 집을 나설 때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뭐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출발 2시간전(6시 15분)까지 도착하라고 해서 상계백병원 앞에서 공항버스 첫차를 기다리는데, 택시가 한대 서더니 마침 자기가 공항에 들어갈 일이 있으니 버스요금으로 공항에 가자고 한다. 가다가 앞 좌석에 한명을 더 태우고 공항에 도착하니 6시가 되었다(중간에 2명을 더 채우자 했을 때 협상요금이 25,000원까지 내려갔다. 공항버스는 편도가 15,000원이지만 현금으로 왕복권을 구입할 경우 1인당 28,000원에 판다).
* 여행안내서에는 아쿠아슈즈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냥 샌달을 신고 가기로 했고(이거 뭐 사람 취향마다 다르겠다. 현지에 가서 물속에서 오랫 동안 놀 요량이면 새로 사서 신고 가도 무방할 듯), 호핑투어 할 때는 디카방수 주머니가 필요하다 해서 퇴근길에 남대문 시장에 들러 25,000원을 주고 하나 구입했다. Sea Walk나 호핑투어, 그리고 리조트내 수영장 이용시 쓰려고 큰 수건 2개를 준비해 갔는데, 쓸 일이 없었다. 돈은 불과 500달러만 가지고 갔는데, 이 것은 실수(모자라는 돈을 국내에서 부쳐줄 경우 달러당 1,200원씩 쳐서 달라 했다. 난 1,100원 근처에서 환전했는데 말이다).
인천공항내에 있는 하나투어 카운터에서 비행기 티켓과 안내문을 받고, 탑승수속을 했더니(대한항공이 탑승수속을 대행해서 그런지, 탑승권은 대항항공 것과 동일) 불과 15분만에 보안검색을 거쳐 출국수속이 끝났다. 출국수속을 하면서, 지난번 미얀마 출장을 마치고 귀국할 때 왜 입국도장을 찍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더니, 폐지되었단다. 난 촌넘.
그런데 탑승동은 본관이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해 앞쪽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개인적인 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던 난 이 곳에 처음 와 본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곳도 있고 아직 감감소식인 곳도 있다. 집사람도 쇼핑엔 그다지 취미가 없는지라(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면세점을 한두군데 둘러보고 나서도 시간이 무지 많이 남았다. 작은 물병을 하나 사서 목마름을 푼다.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화물로 부친 캐리어(비행기내 반입가능한 크기) 하나 외에 우리가 가져간 짐은 저게 다다. 마눌의 표정은 새벽부터 이게 뭐하는 짓이지? 하는 것 같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활주로 바닥이 젖어 있는 것을 보니 비가 계속 내렸나 보다. 한참을 기다려 안으로 들어가니 A320이라는데, 정말 저가항공사 답다는 생각이 든다. 간단한 기내식을 먹고 이내 휴식모드로 돌입. 참 이 때 주는 물 용기(굉장히 얇은 소재로 되어 있음)는 잘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옷이 젖는 경우가 생긴다.
고도가 낮아지는 것 같아 눈을 뜨니 발 밑에 섬들이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해안선에 모래가 거의 보이질 않는다. 화산섬이라서 말 그대로 'Beach'가 없다고 한다(드물게 있기는 있는데 특히 세부에는 없다고. 해서 비싼 리조트들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 다른 섬에서 모래를 날라다 인공비취를 만들었다고). 제주도도 화산섬인데, 모래가 많잖아? 여긴 그럼 제주도보다 젊은 섬인가? 생각한다.
물의 깊이에 따라 바닷물 색이 달라보인다.
이 해안은 그럴싸해 보이는데, 아래 사진에서는 뭔 집들이 개펄같은 곳까지 바다쪽으로 나와 있다.
역시나, 남쪽나라는 무덥다. 땅에서 열기가 확 올라온다. 우린 먼 거리는 아니지만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비행장은 세부섬과 다리로 연결된 막탄섬에 있고, 우리 숙소도 막탄섬 남쪽에 있다(구글어쓰로 검색하면 나옴).
입국심사를 마치고 세관도 무사히 통과(뭐 출발전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산 게 있어야 검색을 당하던지 말던지 하지)한 다음 사진에 보이는 횡단보도를 건너 가이드를 만났는데(오른쪽이 공항구내다), 여기가 하필 흡연구역이라 나와 집사람은 담배냄새에 기분이 좋질 않았다.
우리 팀 여섯명이 모두 도착한 후 다시 길을 건너 준비한 봉고차(토요타자동차의 히야스. 이후 교통편은 형편닿는 대로 타고 다녔다. 봉고트럭 적재함에 지붕을 얹어서 사람을 태우는 '지프니'도 여러번 탔다.)를 타고 점심 먹을 곳으로 향한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트라이시클(바퀴 세개란 뜻), 자전거를 동일목적으로 개조한 트라이바이시클 등이 지나다니는 거리의 모습은 예상한 그대로다.
도착한 날 점심도 먹고, 2일차 저녁도 먹었던 집 '하늘'이다. 종업원도 친절하고(남자종업원은 '철수'라고 부르면 얼른 온다), 음식맛도 그만하면 훌륭하다. 특히 이 곳 세부에서 구하기 어려운 야채(토질 때문에 여기서는 야채농사가 되질 않아 마닐라에서 가져온다고 한다)도 리필을 잘 해 준다. 인원은 여섯명이지만, 세팀이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나서 세부일정을 조정했다. 누군 뭐를 옵션으로 하고 누군 빠지고 등등.
나는 기본으로 들어있는 호핑투어에다 "하루일정이 잡히는 보홀섬 투어+Sea Walk+제트스키와 바나나보트 타기+어메이징쇼 관람"를 추가했다. 동행했던 3모녀팀은 보홀섬투어만 한다고 했고, 총각은 Sea Walk+제트스키와 바나나보트 타기를 신청했다(이들은 세부 출발일에 저녁을 먹은 다음 럭셔리마사지도 추가). 이 옵션투어를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할 금액은 무려 780달러가 되었지만, 400달러는 나중에 보내주기로 하고 일정을 확정했다.
가이드의 입이 귀까지 벌어지는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일부 저가패키지 구입 여행자들이 현지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이유: 패키지 상품에 달린 옵션이 비싸다고 하면서 마치 '에어텔+항공' 상품처럼 가이드를 떼어 놓고 자기들끼리 놀고 간다 함), 현지에서 이들을 맞게 되는 가이드들이 앉아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한다. 참 얄밉고도 무례한 사람들이다. 그럴 바엔 처음부터 '에어텔+항공' 상품을 사서 오지.....
식당 한켠에는 아래와 같은 골프장 광고도 있다. 아직도 이 가격일까?
아직 우기가 끝나지 않아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세부에 도착한 첫날은 날이 너무 좋았다. 일단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 일행(총각포함)은 Sea Walk를 하기 위해 근처 바닷가로 갔다. 3모녀팀은 그냥 숙소에서 쉰다고 했다.
우리가 묵은 Nature Park 리조트는 대충 이런 모습이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마뱀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들이 방안에 들어온 개미들을 잡아먹는다고 하니 두고 볼 일이다.
Sea Walk를 마치고(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돌아오니, 리조트 수영장이 만원이다. 우리도 여기 낑겨서 더 놀았다.
Sea Walk 모습(뭐 별거 없다. 가까운 바다로 나가서 무거운 투구를 하나 쓰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몇걸음 옮겨보는 게 다다. 그 와중에 플래카드 펼쳐보기, 도우미가 날계란 깨뜨려서 물고기 모아주기, 손으로 고기 잡으면 나중에 '노니 비누' 한장 주기 등을 한다. 안경은 벗으라 하고, 물에서 신을 수 있는 신발은 빌려준다. 이 복장 그대로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디카방수팩이 있어 물속으로 가져갈까? 했더니, 그냥 두란다. 자기들 카메라로 사진 찍어주는 것도 패키지에 있다 하면서.
도우미가 날계란을 하나 깨뜨리니, 고기들이 벌떼마냥 달려든다. 앞이 안보일 지경이다. 손으로 고기를 한마리씩 잡았다가 놓아줬다.
Sea Walk를 하고 나서 소금기를 씻어내기 위해 샤워장에 갔지만 물줄기가 하도 약해 얼굴에 물만 바르고 나왔다.
리조트의 수영장에서 더 놀다가 첫날 저녁을 먹으러 간 집, 세부 아리랑. 옥돔구이 맛이 괜찮았다.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한국인 상대 업소들이 있다. 우리는 여기 수퍼마켓에서 맥주와 물 등을 사고, 길거리 과일가게에서 두리안 한통과 망고를 잔뜩 사서 리조트로 돌아왔다. 총각은 아는 사람이 있는 세부시티로 놀러 갔다.
두리안은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기에, 수영장 옆에서 맥주안주 삼아 혼자 다 까먹고 망고는 냉장고에 넣는다. 과일 깎아먹을 과도를 챙기지 못했는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스낵코너에 가지고 가서 잘라달라고 했는데, 가져온 것을 보니 아주 정식으로 과일을 썰어왔다(모른 척하고 이틀을 신세지고 3일차에 1달러를 팁으로 주었다).
집사람이 물과 함께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필리핀에 도착하니 조금 우울한 소식도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하루 전인가 필리핀 남부에서 한국인 한명이 총에 맞아 숨지고 돈을 뺐겼다 한다. 그러고 보니 달포전쯤인가에 내가 타고 온 그 제스타항공편을 이용하여 여기에 놀러왔던 많은 한국인들이 필리핀정부의 갑작스런 비행기 운항금지조치에 발이 묶여 고생했던 일도 있었다. 필리피노들이 한국사람을 돈으로만 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네 나라를 한때 점령했던 일본인은 존경하고, 중국인은 무서워하며, 미국인은 지네들을 보살펴주는 은인으로 생각하는데, 유독 한국사람에 대해서만큼은 오로지 '돈 자랑하는 넘들'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여행자 안전에 대한 가이드의 당부 때문이 아니라 우린 편하게 쉬러 온 것이기 때문에, 어디 나가서 돌아다닐 생각없이 곧바로 잠자리에 든다. 내일은 보홀섬 투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