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이야기

2015년 3월 일본 간사이지방 여행(3.6~11) - 나고야성

무애행 2015. 3. 26. 18:28

 나고야성(名古屋城, なごやじょう- 나고야죠)에 가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구글을 통해서 얻은 사진 한장!

벚꽃이 흐드러졌을 때 찍은 것인데, 이번 여행 날짜를 잡고 나서 간사이지방의 벚꽃은 언제 피나? 하고 찾아봤더니, 3월 하순이나 되어야 한다고.... 대신 매화꽃은 2월말부터 핀다하니 꿩대신 닭이라도 볼 심산이었다.

 

 

 

 지하철로 나고야성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보라색 지하철 메이죠센(名城線-Meijo Line)을 이용하여 여기 시역소(市役所-시야쿠쇼)역에 내리는 것이다. 일본식 한자로 표현된 시역소란 우리말로 시청! 물론 메구루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09:50에 나고야역에서 지하철을 타서, 10:07에 도착했다. 같은 시간에 떠나는 메구루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나고야성까지 22분 걸린다 해서 지하철을 타 봤다(나는 사실 나고야성앞 어디에 메구루버스가 정차하는지 몰랐다. 나고야성 관람을 마치고 도쿠가와엔을 가기 위해 우연히 남문으로 나와 메구루버스를 탔기에 망정이지, 한참 헤맬뻔 했다).

 

 관광루트를 짤 때 도자기로 유명하다는 노리타케의 숲(숲은 아니고 정원 정도 된다)을 먼저 들를까 했었는데, 이번 여행 컨셉은 '서두르지 않는다. 집사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린다'로 정했기 때문에 건너뛰기로 했다(사실 10시에 문을 연다는 기념품점을 들를 경우 언제 노리타케 정원에서 나오게 될지 모른다).

 

 

 

 물이 채워진 해자를 기대했는데, 이 모습은 해자의 맨 아래 부분까지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직선이 아니라 부드러운 사선으로 쌓아올린 해자 안쪽의 성벽, 특히 모서리 부분의 큰 돌을 보니 당시 에도막부의 쇼군(장군의 일본식 표현이다. 막부의 우두머리로 실질적으로 일본을 통치했으며, 메이지유신 이전까지 일왕-덴노는 허울뿐이었다)이 얼마나 대단한 위세를 떨쳤는지 알 것만 같다.

 

 에도 막부(江戶幕府) 또는 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는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에 이어 일본사에서 세 번째로 나타난 그리고 최후의 막부이다. 1603년 3월 24일(게이초(慶長) 8년 음력 2월 12일)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쇼군(征夷大将軍 세이이타이쇼군)에 취임하고 막부를 창설하였을 때부터 시작되어, 1867년 11월 9일 (게이오(慶應) 3년 음력 10월 14일)에 15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대정봉환(大政奉還)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을 천황에게 넘기게 된 것으로 막을 내렸다. 도쿠가와 가문의 쇼군들이 일본을 지배한 이 264년간의 시기를 에도 시대 또는 도쿠가와 시대라 한다. 에도는 오늘날의 동경(도쿄)를 말한다. 

 

 에도 막부는 바쿠한(幕府와 藩) 체제 밑에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을 고정하고, 기독교 금지를 구실로 쇄국(鎖國)을 행하고, 후에는 유교적 교화(敎化)도 이용하면서 전국 지배를 강화했다. 조선에 대해서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통신사를 12회 초청하여 두 세기 동안 양국간의 밀접한 교류를 하였다. 에도 시대 말기, 막부 타도 운동이 융성하였던 격동의 시기는 막말(幕末 바쿠마쓰)이라 칭한다.

 

 

 

 

우리는 동문으로 들어간다.

 

 

 

큰 돌을 잘도 짜 맞췄다.

 

위키백과에서 복사를 한 것인데, 뭐 대충 알아보면 된다. 근데 일본 3대 명성중 하나가 오사카성? 히메지성?

 

 나고야 성(名古屋城, なごやじょう)은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에 있는 성이다.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 17대의 거성으로 긴코죠(金鯱城: 금 샤치호코 성), 긴죠(金城: 금 성)으로도 불린다. 오사카성, 구마모토성과 더불어 일본 3명성이다. 천수에 놓인 긴샤치는 성뿐만 아니라 나고야의 상징이다. 옛 나고야 성은 오다 노부나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근처에 있던 일본군 병기창 때문에 1945년 미군의 공습을 받아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 1945년 5월 나고야 공습시 대천수각, 소천수각, 혼마루어전(本丸御殿)을 비롯해 건물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지만 다행히도 소실을 면한 3개의 야구라(서북, 서남, 동남의 망루), 3개의 문(오모테니노문(表之二門), 구 니노마루 히가시 니노문(舊二之丸東二之門), 니노마루 오테 니노문(二之丸大手二之門)), 혼마루어전 장벽화의 대부분은 중요문화재로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名古屋城は、織田信長誕生の城とされる今川氏織田氏那古野城(なごやじょう)の跡周辺に、徳川家康が九男義直のために天下普請によって築城したとされる。以降は徳川御三家の一つでもある尾張徳川家17代の居城として明治まで利用された。

姫路城熊本城とともに日本三名城に数えられ、伊勢音頭にも「伊勢は津でもつ、津は伊勢でもつ、尾張名古屋は城でもつ」と詠われている。大天守に上げられた金鯱(きんこ))は、城だけでなく名古屋の街の象徴にもなっている。

大小天守と櫓、門、御殿などの一部は昭和戦前期まで残存していたが名古屋大空襲(1945年)によって大部分を焼失した。戦後に天守などが外観復元され、現在城跡は名城公園として整備されている。

 

 나고야성은 1612년에 당시 에도 막부의 장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축성했으며, 1867년의 정치개혁으로 막부가 쓰러질 때까지 도쿠가와 3대 가문의 하나인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의 거성이었다천수각(天守閣) 지붕에 장식된 금색의 샤치호코는 물고기 형상을 한 상상속의 동물로 화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원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중이던 1945년에 성 동쪽에 있던 병기창을 파괴하려는 미군의 공습으로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1959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지하 1층 지상 7층의 천수각을 재건하였다. 성 내부의 1~5층은 전시실로 개방되고 있어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의 유물 등 나고야 성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를 직접 볼 수 있다. 그리고 나고야 성을 중심으로 정비된 메이조(名城) 공원에는 사계절 꽃이 만발한다.

 

 

 

 

 

10:15 매표소에 도착해서 '도쿠가와엔'을 같이 볼 수 있는 640엔짜리 공통권을 샀는데(1,280엔 지출), 사실 내가 갖고 있었던 도니치에코킷부를 제시하고 각각 입장권을 샀어도 결국 같은 요금을 내게 된다(나고야성 500엔->400엔, 도쿠가와정원 300엔->240엔). 공통권도 더 할인해 주는 지는 모르겠다.

 

 

 

나고야성 안내도다.

 

 

비가 몇방울씩 떨어지는 우중충한 하늘과, 꽃이 만개하기는 아직 이른 시절 - 어떻게 이런 조합을 만들어 일본에 왔을까? 내가 선택한 일정이지만 조금 아쉽다.

 

천수각을 기준으로 남동쪽에 있는 니노마루(二之丸/二の丸) 정원은 흘깃 쳐다보고 지나쳤다. 생각해보니, 니노마루란 말은 本丸와 함께 성마다 있는 것 같다. 여기 나고야성에는 남서쪽의 니시노마루(西の丸)와 남쪽에서 동쪽에 이르는 산노마루(三之丸)도 있다.

本丸を中心として南東を二之丸、南西を西之丸(にしのまる)、北西を御深井丸(おふけまる)が取り囲んでいる。さらに南から東にかけて三之丸が囲む

 

 

 

 

천수각 지붕 맨 위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샤치호코가 두개 보인다.

 

 

 

안쪽의 해자에도 물이 없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 かとうきよまさ)?

아무튼 여기에 오니 임진왜란과 관련된 기억이 새롭다.

 

 

 

 

 

 

우리는 서 있는 곳은 1945년 미군의 공습에도 파괴되지 않은 오모테니노문(表二之門, 중요문화재)으로 들어가는 길.

문을 엄청 튼튼하게 지었다. 아무래도 수성을 목적으로 지은 듯하다.

 

 

 

10:30 복원중이라는 혼마루어전(本丸御殿)에 도착했다.

집사람은 밖에서 기다리고, 나 혼자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개방된 곳을 둘러본다.

내부 사진촬영을 허용하고 있으며, 관람에 15분 정도 걸린다.

복원과정을 볼 수 있다는 프로그램(천수각 가는 길에 별도로 신청해야 함)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일본에 호랑이가 살았던가? 허긴, 우리나라에서도 사자나 코끼리 그림이 없는 것은 아니니.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이 조선군과 싸우는 것보다 호랑이를 잡아서 풍신수길에게 고기를 바치는 일에 더 열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갑자기 천장의 높이가 낮아진다. 무심히 지나가다가는 이마를 다칠 듯!

 

 

 

이날 입구에서 안내를 하던 중년의 남성은 한국말을 참 잘 했다. 

 

 

이제 천수각에 들어갈 때다. 일단 기념사진을 찍고(왼쪽에 있는 소천수각쪽으로 들어가서 대천수각으로 이동하도록 동선이 짜여져 있다).

 

천수각 내부관람은 10:55 시작해서 30분 정도 걸렸다. 

나오는 사람마다 우산을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정말 다행하게도 우리가 돌아다닐 때는 비가 한두방울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가 관람을 시작한다. 맨 위층인 7층은 걸어올라가야 한다.

 

오다 노부나가 - 토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가와 이에야스.

1592년에 시작되어 무려 7년이나 지속된 조선침략전쟁(소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과 관계가 아주 깊은 인물들이다.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 보면, 일본에서는 조선정벌을 위해 군사력을 키우고 침략의 명분을 쌓기 위해 진력하는 동안 조선조에서는 뭘 했던가? 요즘 서애 유성룡이 쓴 '징비록'이 역사극으로 TV에서 방송되고 있지만, 어려서 여러번 읽었던 '징비록'에서 정말 후회막급이었던 일이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선을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던 것 같다(내 기억이 틀렸으려나?)     

 

 

 

 

천수각 모형도

 

 

 

 

 

 

 

 

 

나고야성은 주변에 높은 건물이 거의 없어 시내를 둘러보기에 아주 좋다.

들어올 때 보지 못한 물이 가득찬 해자!

 

 

 

 

여기가 맨 위층이다.

지금부터는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서 구경을 한다. 

 

 

 

 

 

 

 

 

 

 

 

 

 

 

 

 

 

 

 

 

 

 

 

밖으로 나간다.

 

 

 

11:30 밖으로 나와서 다시 한번 쳐다본다.

막상 천수각에 들어가서는 나고야성의 상징이라고 하는 용마루에 장식된 금색의 샤치호코를 볼 수가 없었다. 

 

 

 

혹시 의자를 혼자서 넓게 쓰려는 인간들 때문에 저렇게 칸을 나눠 놨을까?

이번 여행에서 예의바르고 남에게 폐를 끼지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왔다는 일본인들도 지하철에서 다리를 쫙 벌리거나 짐을 옆에 올려 놓거나 해서 여분의 공간을 차지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앞에 사람들이 서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들어온 곳으로 다시 나갈까 하다가 지하철역 근처에 버스정류장이 없었던 것을 생각해 내고,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다보니 여기가 현재 정문(남문)이고 그 밖에서 메구루버스를 탈 수 있었다.

 

물 빠진 해자에 사슴이 한마리 보인다.

 

 

 

11:45 조금 피어오르기 시작한 매화와 천수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장 찍었다. 매화꽃만 아니라면 그냥 겨울 풍경이다.

이 근처에는 단체사진 촬영용 계단이 있다.

 

 

 

 

 

 

 

 

 

11:52 성문을 나오자마자 메구루버스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뛰어가서 탔다. 도쿠가와엔이라고 행선지를 물어 봤어야 했는데, 갑자기 '도쿠가와'가 생각이 나질 않아 그냥 '엔?"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길래 옳게 탔나보다 했다.

 

차 안의 안내화면이다. 왼쪽에 노란색 조끼를 입은 사람은 메구루버스 안에서 나고야의 유적지 등을 해설해 주는 사람이다. 

 

 

12:08 도쿠가와정원(엔)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한 시간은 약 16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