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영주 부석사와 소수서원(네팔에서 맺은 인연) 2

무애행 2017. 5. 11. 20:40

부석사 무량수전 안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었던 우리는 경내를 한바퀴 돌면서 성보박물관까지 돌아본 후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묵밥을 잘하는 유명한 집이 있다 해서 찾아가던 중 부석에서 방향을 잃고 잠시 헤매다가 14:45 순흥에 있는 전통묵집에 도착했다. 주변은 그야말로 내가 어려서 보던 시골마을 그대로다.


'순흥전통묵집'의 전화번호는 054-634-4614 이고, 주소는 경북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339이다. 순흥교차로에서 순흥 어린이집과 동인모텔을 보고 읍내쪽으로 들어가다가 오른쪽으로 골목길(순흥로 39번길)을 따라가면 된다찾아가는 방법과 음식 사진 등 안내는 http://kwon-blog.tistory.com/1503이나, http://impresident.tistory.com/85를 참조.


점심으로는 약간 늦은 시간임에도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했고, 우리는 한참을 기다려서야 주문한 묵사발(조를 넣은 작은 공기밥 포함)과 순흥 막걸리 1병을 받을 수 있었다. 빈마음님이 두부도 한 모 주문하려 했으나, 다 떨어졌다는 대답만 들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방에 앉아 사방의 벽을 보니 온통 낙서로 가득하다(몇년동안 벽지 도배를 하지 않았는지 좀 지저분한 느낌). 그 중 낮은 문지방 위에 적힌 <머리 조심> 사투리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다.






빈마음님이 처음 네팔땅을 밟은 것은 원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당초 티벳을 가려다 중국측의 출입제한 조치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네팔로 발을 돌려 ABC를 다녀왔다 한다(이 때는 패키지). 


2015년 4월에는 쿰부에 가서 칼라파타르에 올랐다가 '초 라'를 넘어 고쿄로 넘어가는 일정을 별다른 이유없이 단축하고 내려왔는데, 이후 포카라에 들렀다가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서 대지진을 만났다고. 대지진이 났을 때 그 곳의 텐트촌을 운영하는 '닐멀'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작년 마르디히말 트레킹을 마치고 그 곳에 들러야만 했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우리는 작년 네팔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중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하며, 두사람 다 가보지 못한 마나슬루 서킷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빈마음님은 딸(Tal)에서 트레킹을 시작하여 안나푸르나 서킷을 했고<Tal 기준으로 정확하게 나보다 하루 먼저 길을 떠났다>, 또 들른 지점도 똑같았기 때문에 쉬리카르카~틸리초베이스캠프 구간에서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토롱 라를 넘어 고레빠니에서 푼힐 일출을 본 다음 다라빠니에서 ABC 방향으로 가지 않고 간드룩~란드룩~마르디히말을 거쳐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로 내려갔기 때문에 다시는 트레킹 도중에 마주칠 수가 없었다.


다만 B여인이 촘롱에서 나랑 헤어진 다음 지누단다~란드룩~마르디히말을 거쳐 빈마음님과 거의 같은 경로를 택했으므로 마르디히말 능선상에서 만났을 가능성이 있는데, 두사람 모두 만났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시원한 묵밥은 정말 맛있었고, 막걸리는 염치불구하고 내가 거의 다 마셨다(빈마음님이 운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 집은 처음에 할머니 두분이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어느새 유명세를 타서 요즈음에는 순흥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집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집이 유명세를 탄 이후 순흥읍내에는 비슷한 상호를 사용하는 묵집이 여럿 생겼다고 한다. 


16:15 순흥전통묵집을 출발해서 5분만에 소수서원 주차장(주차비 무료)에 도착했다. 주차장 한켠에 캠핑카를 몰고 온 가족이 보인다. 여기서 진을 치려는가?



원래 입장료는 1인당 3,000원인데, 2017 여행주간(4.29~5.14)에는 50% 할인을 해 준다고 한다. 나야 고맙지요. 여기 입장료도 빈마음님이 냈다. 또 고맙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입장권을 사면 선비촌까지 관람할 수 있다.



여기 소수서원은 폐사가 된 숙수사의 절터에 세워졌다고 한다. 매표소에서 머지 않은 곳에 당간지주가 서 있다.

http://seonbichon.yeongju.go.kr/ 참조

소수서원 입구의 소나무 숲을 지나 서원 쪽으로 가다보면 숙수사(宿水寺)지 당간지주가 길 오른쪽 숲 속에 서 있다. 숙수사는 세조3년(1457) ‘단종복위운동’ 실패로 순흥도호부가 풍기군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면서 없어졌다.




 경렴정이다. 실은 여기서 개울 건너편에 있는 '백운동 경자바위'를 보고 갔어야 하는데, 무심하게 서원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나중에 안내문을 보고 바위를 찾으러 갔더니 막상 그 곳에서는 '경'자가 새겨진 것을 볼 수 없었다. 아래 사진은 나오는 길에 찍은 것이다.



















빈마음님은 여기서 많은 유학자들의 이름을 보고 반가워했다. 고려말 조선초 인물인 정몽주-정도전-권근 중에서 유독 유학의 계보가 후에 태종이 된 이방원에게 협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참혹하게 살해되었던 정몽주를 기둥으로 세워진 게 의아스럽다.






라일락꽃 향기를 맡아봅시다.



이 곳이 절터였음을 보여주는 각종 석물들.

이 소수서원이 세워졌을 무렵에는 성리학풍이 크게 일어 머리에 뿔난 유생들의 불교 핍박이 횡행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기서는 오래전에 폐사가 된 절터여서 그런지 아까 본 당간지주를 비롯해서 각종 석물들을 부수거나 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날이 덥습니다. 물 한모금 마시고



서원 밖으로 나가서 '백운동 경자바위'를 찾으러 다리를 건너갔다(표지판도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막상 그 바위에 새겨진 글자는 취한대까지 가서도 볼 수가 없었다(반대편에서 봐야 함).




'경'자가 새겨진 바위를 가까이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바위 근처의 풍광은 아주 아름다웠다. 











혹시 성황당?






 오후 다섯시 조금 넘어 선비촌으로 건너갔다. 여전히 햇살이 따가운 편이다.







대청이 유달리 높다. 또한 마루 턱도 높다. 안채에서 아이들을 키웠다면 어떻게 대청 마루를 오르내렸을까?







 초가지붕 무게에 기둥이 뒤틀리지는 않았을까?

나도 어려서 초가집에 살았지만, 전형적인 자 형태의 구조여서 이런 대문은 좀 낯설다.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돌아보는 재미도 있겠다.








이 새는 처음 보는 것 같다. 혹시 까치 새끼일까?




17:40 소수서원 관람을 마쳤다. 주마간산식으로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인 소수서원을 살짝 맛본 것으로 만족한다.


빈마음님은 저녁을 먹기 위해 풍기 근처에 있는 영주축협 한우프라자(http://www.yjbeef.co.kr/)로 나를 데려갔다(소수서원에서 약 15분 소요). 우리는 여기서 등심을 주문<행락철 손님이 많아 갈비살은 진작에 떨어졌다고 한다. 여기서도 새삼 느꼈지만, 이런대도 국민들은 살기 어렵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다>해서 반주로 소주 1병(역시 내가 모두 흡입)을 마시고 냉면으로 식사를 했는데, 난 오늘 한번도 지갑을 열지 못했다.






저녁 식사후 밖에 나와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빈마음님 차를 타고 영주종합터미널에 도착해서 작별을 했다. 마나슬루 트레킹을 위해 협의할 게 있으면 더 하기로 하고서 말이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나를 데불고 다니면서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구경시켜주고 또 맛있는 밥까지 사 준 빈마음님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담에 서울에 오면 두배로 갚아 드리는 수 밖에 없겠구나.


나는 터미널에서 순흥기지떡(술빵) 1kg을 사서 20:05 동서울행 버스에 올라탔다.




출발시 서울에 근접해서 길이 막힌다는 정보가 있었으나, 내가 탄 버스는 출발한 지 두시간 반만인 22:30에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고 나는 23:20에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순흥기지떡! 먹어보니 맛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