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맞는 부처님오신날
모처럼 일요일이 부처님오신날로 공휴일이다. 금요일 오후부터 시작되는 황금연휴(?)인 셈인데, 주말에 가볍게 운동을 하고 부처님오신날은 보우더나트를 갈까 스와얌부나트를 갈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운전기사가 이런 기대를 한번에 깨버렸다. 자기 아버지 45제라고 한다. 불교와 힌두교를 구분하지 않고 믿는 네와르족에게는 이 45제가 굉장히 중요한 날로서 아들들은 꼭 참석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쉬라고 했다. 그럴거면 지난 목요일에 쉬지나 말지. 한달에 이틀만 휴가를 줘도 된다고 고용계약서에 써 있지만, 1주일에 하루씩 쉬게 해주는 데도 데 영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아 아쉽다.
가사도우미는 힌두교도다. 마침 스와얌부나트는 힌두교도들도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 성스러운 날에 가사도우미도 같이 가서 기도를 하게 하면 좋을 것 같아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달포전에 도우미의 여동생이 심장병으로 죽었다. 힌두교도들은 45제가 아니라 1년뒤 초상격인 날을 중요하게 기린다고 한다). 택시기사가 미터기는 고장났고, 300루피*를 달라고 하니까 앞자리에 탔던 가사도우미가 택시에서 내리려 한다(200루피만 해도 충분한 수준이다). 뭐 좋은 날이니 조금 적선하는 셈치고 그냥 가자고 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 부처님오신날 거리행진 때문에 길이 막혔다. 차를 돌리려는 택시기사에게 아예 시동을 끄고 기다리자고 했다.
* 실제 고장난 차들이 많고, 고장이 나지 않았어도 미터기를 조작해서 다닌 차가 많다고 들었다. 두르바르 마그에서 집까지 오는 데 90루피부터 130루피까지 다양하게 요금이 나온다. 협상하자면 처음에는 200루피까지 부르다가 150루피까지는 내려가는데, 승객이 외국인인 경우 대부분 처음에 높게 부른다.
아침 행렬은 학생들이 많이 등장한다. 평화 비폭력 사랑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흔든다.
차 옆을 비집고 들어오는 오토바이 때문에 막상 저 가마를 제대로 찍지 못했다. 네팔리들의 사고단면을 보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스와얌부나트에 도착하니 먼 발치에서 경찰들이 차량통행을 막고 있다. 길 옆집에서는 부처님을 모시고 공양준비에 여념이 없다.
걸어서 입구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잠시 한눈을 팔고 있으면 누군가가 밀고 지나간다.
일단 저기서 띠까를 하고(한국식으로 다음은 내 차례야 하고 기다리다간 못한다.)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촛불공양을 하나 올린다. 지금 불을 붙이고 있는 처자가 내 가사도우미다. 오늘 햇살이 따갑다고 양산을 들고 나왔다. 막 서른이 되었는데 아직 미혼이다. 남동생이 경찰청소속 축구선수인데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동하고 있으며, 갓 결혼한 시누이는 태권도선수다.
옆에서는 헌혈 행사가 한창이다.
극락으로 오르는 길. 사람들로 가득찼다.
사람들에 밀려서 쉽게 올라왔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에 스님 한분이 앉아서 사람들이 건네는 공양물을 부처님께 올린다(모두 다 스님이 들어가서 도와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북쪽과 동쪽에는 없었던 것 같다). 어깨에 몇겹의 천을 두르고 계신지 모르겠다.
서쪽 주된 기도처다. 발 디딜 틈이 없다. 여기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이른바 네팔의 냄새는 다 맡은 것 같기도 하고.... 10여분 정도 걸려서 가사도우미와 난 정면에 다가갈 수 있었다.
공양물을 올려야 하는데.... 여하튼 가사도우미와 함께 가급적이면 많은 마니차를 돌리고
탑 위로 작업인부가 올라가고 있다.
이게(도르제) 올라오던 길에 있었는데, 한바퀴 돌고 난 이제서야 본다. 곡식과 과일 그리고 향을 올리려는 사람들로 여기도 만만치 않게 붐빈다.
남쪽에 있는 작은 절에 들어갔다.
박물관 입구다. 아마도 기름칠을 한 듯하다.
오늘은 이 박물관에 모셔진 부처님도 호사를 하는가 보다.
지난번 왔을 때는 보관함 천장에 댄 합판이 무너져 내렸었는데, 보수를 했나보다.
서쪽 출입구로 내려왔다. 오늘은 무료지만, 평상시 관광객은 200루피를 내야 한다. 차가 다니는 길이 아닌 계단을 이용해 내려가기로 한다.
오늘은 원숭이들도 기쁜 날인가? 사람들을 보고도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지금 한창 새끼를 기를 때다. 담벼락 위에 나란히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요기 세마리의 모정을 보라.
누군가가 계단을 통해 올라오는 길에 멋진 인형을 세워놨다.
스와얌부나트 참배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 조금 쉰 다음 템포(3륜차)를 타고 시내로 나왔다. 중앙우체국에서 뒷길을 이용해 두르바르광장으로 가고 있다.
두르바르광장 근처 평화공원 안에 모셔진 부처님이다.
두르바르광장의 여러 건축물들을 바라보고 있던중, 갑자기 경찰이 거리에 나타났다. 무슨 일일까?
뒤편에 보이는 건물은 지금이라도 곧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Silyan Satti다(나무 한 그루를 베어 카스타만답을 짓고 난 목재로 저 집을 또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몬순이 오기 전에 수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곧 확성기를 단 승용차가 광장으로 들어오고, 그 뒤에 이렇게 많은 행렬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장대에 각종 깃발을 꽂고 이리저리 돌리는 등 갖가지 묘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서양인들은 여기서도 자전거를 많이 끌고 다닌다.
명당은 이런 곳이지...
이윽고 행렬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차가 등장한다. 아마도 고승대덕이거나 아님 정부관료가 타고 있는 듯.
오늘은 정말 뜻하지 않게 네팔의 카트만두거리에서 두번이나 부처님오신날을 찬탄하는 행렬과 마주쳤다.
꾸마리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행운까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여, 행복할지어다.
낙행합장.
(추가) 이 축하행렬이 모두 지나가고 잠시 두르바르광장의 모습을 둘러보고 있는데 북쪽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가 보니 축하공연이 있네요.
무대뒤 휘장을 들치고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아예 공연무대위에 아이를 놀려놓은 모습도 보이고... 제3회 술 먹지 않는 날이기도 하군요.
근데 불기 2556년 BUDDHA JAYANTI라고 써야 하는데, BUDHHA로 썼군요. 여기선 저 정도로 아무도 뭐라하지 않습니다. 제가 도착해서 명함인쇄에 한달정도 걸렸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보름정도만에 가져온 초고가 틀렸다고 교정을 했더니 다시 10일 걸려서 갖다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