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무애

[스크랩] 지리산 벽송사 선방 대중공양 2(벽송사편)

무애행 2016. 9. 6. 20:01

 벽송사에 올라가니 마침 점심공양 때라 된지라, 우리는 맛있는 절밥을 먹게 되었다.

당시 벽송사에는 템플스테이 하러 온 분들이 많아서 공양간이 붐볐는데, 특이하게도 김밥도 메뉴에 있었다(나중에 준원스님께서는 선방스님들에게 싸드리고 남은 김밥이라고 하셨다).

 

 

 

이날 우리를 맞아준 분은 선방에서 '선현(禪賢)' 소임<선원장 다음의 선방 책임>을 맡고 있는 준원(準願)스님이시다. 준원스님은 일찌기 기홍당 운경스님께 법을 받으셨으며, 의정부에 있는 봉화정사 불사를 성공적으로 마치신 후 이를 정수스님(얼마전까지 제25교구 본사 봉선사 주지를 지내셨다)에게 운영하도록 해 주신 분이다.

 

 

사진속 스님들(정혜사 주지 제월스님과 벽송사 준원스님; 준원스님이 제월스님의 사숙이 된다)이 앉아 계신 널따란 바위에 서면 벽송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계단 하나를 올라 너른 마당을 사이에 두고 청허당과 안국당이 마주하고 있고, 좌우로 붉은 배롱나무 꽃이 한창인 높은 축대를 오르면 '벽송선원' 선방이 가운데에 자리하고 양 옆으로 요사채가 있다.

선방 뒤로 원통전이 있고 그 옆으로 산신각이 있다. 대개의 경우 대웅전(또는 주불을 모신 전각; 예를 들면 비로전-적광전-극락전-관음전 등)을 중심으로 가람배치가 이뤄지는 데, 여기는 선방이 한가운 데 있다.

 

원통전 뒤로는 벽송사의 상징이 된 도인송과 미인송이 있다. 도인송은 꼿꼿한데 비해 미인송은 비스듬히 몸을 눕히고 있다(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설치해 놨다). 제일 위쪽 예전 법당 자리가 있는 곳에는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그 옆으로 승탑 세 기가 오순도순 모여 있다. 청허당 뒤 절 입구에는 장승 두 기가 보호각에 둘러싸여 있는데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특히 이 사찰은 1950년대 전란(戰亂)시 빨치산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모든 전각이 완전히 소실되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잠시 쉬다가 준원스님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서 차 한잔씩을 얻어 마셨다(커피도 내 주셨다-요즘 절집에서는 차만 마시는 게 아니라 대중들의 수요에 따라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일이 흔하다). 준원스님으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듣고 나서, 우리는 원통전에 들러 부처님께 참배하고 도인송과 미인송을 보러 올라갔다.

 

 

 

 

 

 

 

 

 

무슨 소원을 빌고 계신가요?

소나무 껍질 틈틈이에 1000원짜리 지폐가 여기저기 꽂혀있다.

 

 

 

 

 

선방 대중공양을 온 정혜사 대중들과 단체사진을 한장 남긴다.

 

 

 

 

 

눈푸른 납자들이 목숨을 걸고 수행정진을 하는 공간 - 벽송선원이다.

평소에는 사진속 대나무를 경계로 속인들의 출입을 엄금하고 있으나, 우리가 간 날은 마침 목욕하고 정비하는 날이라 대부분의 스님들이 외출을 하셨기 때문에 비어 있는 선방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준원스님이 인도해 주셨다.

 

 

좌복은 스님들이 앉는 자리이기 대문에 우리는 그 사이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방바닥도 시원하고, 불어오는 바람도 더위를 식혀주는 듯 해서 비록 잠깐 동안이었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다만 정혜사 주지 제월스님은 준원스님의 특별한 배려로 당신이 좌선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우리는 선방 문고리만 잡고 오는 것이 아니라 선방에 들어가 직접 화두를 들고 좌선을 할 수 있었는데, 다시금 이런 기회를 주신 준원스님께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벽송사와 이내 이별을 한다.

동종-목장승을 살펴보면서 내려간다.

 

 

 

 

 

 

 

얼마쯤 걸어 내려오니 길 양옆에 장승 한쌍이 서 있다.

 

 

출처 : 의정부불교포교원
글쓴이 : 樂行(안구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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