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이야기

네팔을 떠나며 3/3(귀국과 큰 아들의 훈련소 입소)

무애행 2013. 3. 26. 17:18

세계의 정상 에베레스트를 제대로 포착한 누군가의 작품인데, 찍은 장소는 EBC트렉의 마지막 Lodge가 있는 고락셉(해발 5150m)에서 칼라파타르(5550m)로 올라가는 길 어디쯤으로 생각된다. 나는 해가 막 뜨기 시작했을 무렵 칼라파타르로 오르기 시작했으나 너무 힘이 들어 중도에 발길을 돌려 내려왔었는데, 이렇게 좋은 사진을 보면 정말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아래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인데, 에베레스트 산의 모습으로 보아 나보다 높은 곳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네팔에 머물렀던 1년 동안, EBC - ABC(Annapurna Sanctuary + Pun Hill) - GosainKund 트레킹을 경험했으니 뭐 별반 아쉬움이야 있겠냐마는 그래도 ABC Circuit(안나푸르나 외곽을 도는 트레킹)와 Langtang을 더 가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남아 있다.  

 

2013년 2월의 마지막 날 저녁에는 이 곳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의 현지법인 대표께서 환송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환송대상자는 코이카가 발주한 현장의 감리를 맡고 있던 사람과 나 둘이였는데, 정성스러운 음식은 물론 노래방 시설까지 준비해 주셔서 집 사람과 함께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타멜의 한국음식점 '빌라 에베레스트' 주인인 '앙 도르제 세르파'와의 3.1절 골프는 당사자 일정 때문에 성사되지 않았다. 그는 대단히 미안하다고 하면서 저녁때 자기 집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고, 소주를 들고 간 우리 일행<지난 1월 하순 이후 네팔의 음식점들은 독점수입업자가 통관을 늦추는 바람에 소주를 구할 수 없어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장으로부터 이런 사정을 들은 일행중 한 사람이 집에 있던 소주를 몇병 가지고 갔다>이 먹은 음식값 전부를 흔쾌히 자기가 부담하겠노라 했다. 정말 고마운 네팔친구가 아닐 수 없다.   

 

금요일에는 골프를 같이 하지 못했지만, 다음 날(토) 골프장 행사 때 같은 조에 넣어달라 부탁을 해서 네팔에서의 마지막 라운드를 함께 했다.

 

이 원숭이는 앞다리 모두 손목 아래가 없다. 캐디들 말을 들어보니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다친 경우라고 한다.

 

 

 

 

 

우리는 18홀 라운드를 마치고(성적이 좋지 않았으므로 상을 탈 수는 없는 상황) 우승자에게 주는 트로피를 잡고 포즈만 취했다.

 

이 사진은 빌라 에베레스트 식당 안에서 찍은 것이다.

 

금요일(2013.3.1) 비행기로 네팔에 도착한 내 손님들을 모시고 토요일 저녁에 다시 빌라 에베레스트로 갔다. 사진속의 남성은 네팔교민회 총무를 맡아보고 있는 이호철씨<현지에서 '에베레스트 아리랑'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어 내 손님들의 투어를 부탁했다>. 여기서 '제이빌 여행사'를 운영하는 '홈 바따라이'도 만나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나보다 며칠 앞서 한국으로 떠난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

 

그리고 나도 떠난다(2013.3.4). 환송 꽃다발을 마련해 준 K Water의 김소장, 고마워(100타 이내로 골프성적이 좋아지면 연락주세요). On the Grill을 운영하는 탁사장과 골프연습장을 개장한 김사장은 대박나고. 

 

 

지난 1년 동안 나와 함께 한 운전기사 Bhim(부친상을 당한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모자부터 신발까지 아직도 저렇게 흰 색으로만 입고 다닌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가 떠나기 직전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

 

1년 동안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밥하고, 청소해준 Saru(지난 여름 몬순 때, 순다리잘 계곡에 가서 찍은 사진). 일찌감치 다른 한국인 가정에 일거리가 생겼고, 한달쯤 휴가를 갔으면 했다. 이 두 사람에게는 그동안의 수고에 답하는 마음으로  한달치 월급에 상당하는 금액을 더 주었다. 

 

 

지금부터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몇가지 되짚어 보기로 한다. 

 

2013년 2월 1일, 세종한국 문화 및 언어교육원 제11기 입학식에서. 현지에서 모자공장을 운영하는 조회장과 함께 뜬금없이 축사를 하기도 했다. 이 어학원 설립자인신 영봉스님은 현재 네팔한인회장직도 맡고 있으며, 모든 교육은 '무료'다. 이 날 입학한 네팔리들에게, 시간을 잘 지키고, 나와 학교 주변을 깨끗이 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인사하지 말 것 등을 주문하셨다. 

 

현재 한국에서는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네팔 근로자들이 한국에서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2012년말까지 약 15,000명의 근로자가 입국하였다(2013년에는 약 5,000명 정도가 추가로 입국할 것으로 예상). 한국의 임금수준은 최저임금 적용에 있어 외국인을 차별하지 아니하므로 시간외근무가 없더라도 월 1,000달러에 이르는데<시간외 수당을 받거나 연차가 올라가면 1,500~2,000달러까지 가능> 이러한 임금은 말레이지아나 중동지역에 간 네팔리들이 받는 급여(200~250달러)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한국어 교사들(전부 네팔리). 이들도 호시탐탐 한국으로 갈 기회를 엿보고 있어 교사 충원이 큰 문제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신다.

  

 

 

 

 

지난 여름 제3국의 골프장에서. 마침 작은 토너먼트가 있다 해서 네팔 공항골프장의 캡틴이자 네팔 골프협회 사무총장인 Tashi Ghale(따시 갈레)과 함께 참석했었는데, 행운상으로 이 나라에서 버마까지 왕복항공권을 받았지만 현지의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기부를 하고 왔다.  

 

일단 태국에서 몸을 풀기로 했는데, 날이 너무 더워서 난 한시라도 빨리 끝냈으면 했다. 

 

토너먼트가 열렸던 나라의 골프장 모습(연습그린과 드라이빙 레인지에 연습볼을 준비해 줬음) 

 

 

따시 갈레의 핸디캡은 +2, 난 +20

 

 

 

 

여기에도 한국골퍼들이 많이 오기는 오는가 보다.

 

이 대회 스폰서를 맡았던 타이거맥주 회사의 도우미들

 

  

 

같이 갔던 사람들(한 사람은 인도출신 의사, 다른 둘은 네팔리로 치과의사와 증권회사 임원)  

 

 

우승자에겐 트로피외에도 조니워커 골드 한병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행운상 1등을 한 나도 기념사진 한컷(내가 상으로 받았지만 기부했던 비행기표는 경매방식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던 현지인이 구매했고, 내게는 골프우산 하나와 술 한병을 기념으로 주었다) 

   

 

우리가 떠날 때쯤 다시 한번 포즈를 취해줬다.

 

 

3일 동안 내 캐디를 했던 Pov.  여기 캐디들은 자기 손님이 떠날 때 인사를 하기 위해 이처럼 모여 있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육로로 간다고 했다가 급히 방향을 바꿔 작은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공항 내부 면세점 모습. 

  

 

 

 

 

 

 

 

 

네팔의 양복점. 여기서 양복 한벌을 맞춰 입었는데 그런대로 괜찮다. 단 같이 주문했던 와이셔츠는 정말 볼 품이 없다.

 

카트만두 꾸마리도 두어번 보고(두르바르 스퀘어에 있는 꾸마리가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이 사진들은 다른 행사 때 밖에 나온 모습을 찍은 것을 얻어왔다. 꾸마리의 발이 땅에 닿으면 안된다고 한다. 피를 흘려서도 안되고-고로 생리를 시작하게 되면 꾸마리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떠나기 하루 전, NRB의 총재를 만나 귀국인사를 했더니 내게 몇가지 부탁을 한 뒤에 자기들이 환송저녁을 준비했으니 꼭 참석해달라 해서 간 음식점(경찰청 본부앞에 있는 이 음식점 이름이 'Nepali-Russian Cuisine'인데, 여자가 러시아 사람이라서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먹은 음식은 네와리정식이었다) 

 

여기에는 NRB의 부총재 두명이 모두 참석했고, 조사국장 및 조사국 과장들도 나와서 내게 석별의 인사를 건넸다. 이 날 술로는 예의 위스키(조니워커 블랙이 나오면 최상급 대우라 여겨진다. 보통은 레드 정도)와 네팔 전통술 '네와리 럭시'가 제공되었는데, 웨이터가 럭시의 알콜함량을 보여주기 위해 불을 붙여 놓았다. 마셔보니 60도는 넘는 것 같았다. 

 

 

 

 

 

 

 

그리고 NRB가 마련한 선물. 내가 불교신자란 것을 감안한 것으로 여겨진다.

 

 

작년 5월, 부탄 중앙은행 총재를 만났을 때

 

 

NRB 사무실

 

UPS도 새 것으로 갈아주었건만, 2013년 들어서는 하루에 한두시간 밖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내선용과 외선용 전화기. 이 것은 상당한 배려의 결과다.

 

 

난 같은 기번호를 가진 화폐(액면 1,000루피)라고 생각해서 NRB 발권국 과장에게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보냈더니 처음에는 위폐인지도 모르겠다며 직접 내 사무실에 와서 실물을 보고 싶어했다. 다행히도 다른 번호라고 한다. 맨 나중 숫자(3을 거울에 비춘 듯한 모양)에서 아래로 꼬리가 달린 것은 '6'이고 꼬리 부분이 살짝 정리된 것은 '9'라고 한다<현재 이렇게 '9'를 표현하는 일반인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아래 사진 두장에서 화폐의 기번호는 각각 13-395949/395946, 13-395519/395516이다.

 

 

 

코이카의 젊은이들. 한국에서 소주 사 줄께, 연락들 해라(네팔보다 쌀 거야).

 

 

네팔의 코이카 졸업생(KANN)들이 마련한 송년의 밤

 

 

 

 

 

 

기업인들이 마련한 자리. 이 자리에서도 '한국에 있는 근로자들의 송금수수료 인하에 노력해 달라'는 주문이 많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얼마 전 '한의사'가 된 큰 아이가 4주간의 훈련일정으로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훈련 종료후 보건소 등에서 공익신분으로 복무 예정). 32년전 의정부에 있는 보충대로 입대했었던 나도 논산훈련소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