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진 사람에게는 모든 시간이 소중하다(아니 사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시간은 소중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한순간도 방일하지 말고 수행에 전념하라'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목요일에 퇴근하고 나서 갑자기 오른쪽 발바닥에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요일 오후에 어디를 다녀오면 좋을까 생각하던차, 뜻하지 아니한 복병을 만난 셈이다. 지금까지 발이 아파서 어디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한 일이 없었던지라 저으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기사에게 라또 마첸드라나트('붉은 색의 마첸드라나트'라는 뜻)의 고향으로 알려진 분가마티(Bungamati)에 가 보자고 했다. 이 곳은 지난 주말 하티반 리조트로 올라가던 길에 바그마티강 건너편에 보이던 작은 마을인데, 전설에 따르면 라또 마첸드라나트 신상을 둘러싼 두 마을간의 분쟁을 중재한 결과, 고향인 분가마티에서 6개월을 모시고 나머지 6개월은 파탄에 있는 라또 마첸드라나트 신당에서 보내기로 했다 한다(한글판 론리 플래닛, pp 202-203 및 211 참조 - 참고로 2010년에 발행된 초판2쇄에는 전체적으로 정말 민망한 수준의 번역이 포함되어 있어 결코 구입을 권장할 수가 없다. 물론 영어 원판에도 잘못된 내용이 군데군데 보이지만, 한글번역은 네팔땅을 구글어쓰로도 찾아보지 않은 인문 지리 역사 문외한들이 번역한 결과로 여겨진다. 대표적인 오역은 'Kathmandu Valley'를 '카트만두 계곡'으로, 'Great Tamel'을 '타멜광역시'로 번역한 것일 게다).
작은 마을을 둘러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또 고도차도 없으니 그져 평범한 차림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시계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포장을 하다만 모습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다. 그러나 난 아직도 왜 네팔리들이 이런 모습에 익숙해 하며 개선을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기사가 나와 함께 걷는다(이 사람도 자기가 가보지 않은 곳은 나와 함께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아직 아버지가 동아가신지 1년이 되지 않는 상중이라 네왈리 전통대로 신발부터 모자까지 흰 색으로 통일하고 다닌다)
오늘 돌아본 분가마티 마을과 그보다 약간 북쪽에 있는 Khokana 마을에서 돌아다닌 경로다.
비록 무너져 가는 모습이라도 이런 가옥들이 있음에 네팔의 오래된 마을을 돌아다니는 기쁨이 있다. 나무로 만든 창문틀의 아름다움도 빼 놓을 수 없는 광경인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네팔에서 새로 짓는 가옥의 90%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다. 그 이유중 하나는 1934에 겪은 대지진의 후유증이라고 한다. 아마도 10여년 정도 있으면, 네팔의 어느 돈많고 야심찬 사업가가 한국의 민속촌을 본쁜 전통마을 보존지역을 짓겠다고 나설 것만 같다.
창문을 보면 어느 하나도 같은 모양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또 대부분 어느 하나는 모습을 감췄다. 지금은 한창 추운 겨울이라 햇빛이 좋은 한낮에는 거의 모든 네팔리들이 집 밖의 양지바른 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물론 빨래 말리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광경이다.
혹시 이 물건이 무엇인지 아시겠는가?
동네에는 어딜가나 가축(가금류 포함)들이 가득하다. 그냥 평화로워 보이는 오리떼와, 지나가는 관광객을 보고 한껏 꼬리에 힘을 주고 짖어대는 개(아주 드문 광경이다), 그리고 새끼 병아리를 품은 어미 닭의 모습이다.
다음에 만난 오리떼도 평화스러 보였는데, 갑자기 근처에서 꽥꽥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19금 수준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이구, 그런 일이 있었어?
이 염소도 곧 몸을 풀 것처럼 보인다.
어린 아이들이 종이를 갖고 놀고 있다 뭔가를 접으려는 듯해서, 옛날 옛적에 비행기 접던 솜씨를 조금 보여줬다. 난 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아이들은 벽돌을 들고 일어선다. 왜?
자치기 놀이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 여기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판 떴다. 아이들이 박수를 쳐 줬다.
한켠에서는 시장놀이를 하고 있다. 뭔가를 사 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분가마티의 라또 마첸드라나트 사원 입구(남쪽)다. 왼쪽에서 마을사람들이 대나무 바구니도 만들고, 옥수수 껍질로 방석도 짜고, 또 뜨개질을 해서 털장갑도 짜고 있다. 자세히 보니 방석(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멍석에 가깝다)은 볏집과 옥수수 껍질을 모두 이용해 단단하게 짜고 있었는데, 기사에게 물어보니 요즘이 이른바 '농한기'에 해당되기 때문에 남녀노소(노소까지는 아니다) 할 것 없이 방석을 짜고 있다 한다.
이 것은 이른바 네팔식 김치와 피클이다.
관광객용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들어가 보질 않아 얼마나 안이 깨끗한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3층 주택을 4층으로 개조한 듯 하다. 3층의 창문들이 아름답다. 여기에는 목공예, 금속공예 장인들이 꽤 많이 있다 한다. 멀리서 보니 그런데로 아름다워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마무리 솜씨가 좀 모자란 듯 하다.
광장 한가운데 있는 우물. 아무래도 이 우물은 사용불가일 것 같은데, 주변에는 물통들이 놓여 있어 알 수가 없다.
내가 다가갔을 때 개 꼬리에 비닐봉지를 씌워놓고 즐거워하던 어린이.
나를 끌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이 인도의 샤크라 양식의 사원이 레또 마찬드라나트 신상이 모셔진 곳이다.
정말 다행히도,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5일 뒤면 이 사원을 떠나서 파탄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친구까지 데불고 와서 사진을 또 찍어달라던 어린아이.
북쪽 출구 모습이다.
첨엔 왜 깨진 돌을 길 가운데 그냥 뒀나 했는데, 길을 높이느라 몸통의 대부분이 땅 속에 묻혀버린 사자상이다.
에유, 엄만 어딜 간겨? 우리끼리 낮잠이나 자자.
이 곳에는 카페트공장이 여럿 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 했더니 안된다고 하던 사람이 막상 돌아서서 부분 사진만 찍으려고 했더니 뒤돌아 보는 바람에 어색한 장면이 나오고 말았다.
남자들은, 어딜가나 놀이에 열심이다. 그래 농한기라는데, 놀 때는 놀아야지. 이 놀이는 네팔에서 처음 본다(조개껍질처럼 생긴 것을 여러개 손등에 얹거나 손바닥에 놓았다가 던져서 나온 앞뒤 숫자를 가려서 말을 쓰는 광경이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윷놀이와 비슷한 점이 있다).
네팔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쉬바신'의 아들을 기리는 '가네쉬' 신상이다.
최신 급수시설에 밀려 사양산업화(?)되는 옛 우물. 그렇지만 저 속을 들여다 보면, 식수로는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역개발센터? 그리고 문 닫힌 도서관.
이 연못이 왜 신성한 것일까? 신성하다면 왜 주민들을 저 물이 저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일까? 아니 왜 저기다가 쓰레기를 버리는 것일까?
병아린가, 작은 새들인가가 곡식 낟알을 먹기 위해 노력중이다.
금속공예점
지나온 골목길을 돌아본다. 그져 평범한 모습. 시장은 여기서부터인가 보다.
바로 눈 앞에 연못 두개가 나타났는데, 윗 연못가에서는 택시가 차를 닦고 있었고, 아래 연못의 물은 말랐다.
참새들이 보이는지?
좁디 좁은 2층 난간에서 햇빛을 쬐는 어린아이들.
최근에는 집을 다시 지어 큰 아들과 작은 아들에게 나눠주는 일이 많다 하는데, 출입구는 달리 냈다 한다.
저 비싼 차를 누가 그냥 내버려뒀을꼬?
분가마티에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Khokana 거리 모습이다. 여기도 소개되기를 옛 네왈리사람들의 정취가 마냥 살아 있는 곳이라 했건만, 최근 네팔의 추세를 그냥 반영하는 것 같다. 뭔가 손을 댄 건물은 외양이 아주 다르다. 그도 아니면 나무창틀이 아니라 플라스틱과 유리로 만든 문이 보이고.
그래도 옛날 모습을 간직한 건물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난다.
비둘기집도 있다. 예전 네팔 유일의 케이블카가 있는 마나까나마 사원에서 이런 모습을 처음 봤었다.
마을 중심가에 있는 힌두신당. 신당앞은 염소떼가 점령했다. 문도 닫혀 있어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질 못했다.
마을의 대장염소격쯤 되나 보다. 그런데 오줌을 쌀 때는 아주 얌전하게 앞다리를 꿇고 일을 본다. 마을 남자들은 카드놀이 등에 열중이다. 한쪽에서는 공책에다 성적을 적어가며 놀던데...
이 마을에서 처음 본 것 같다. 오리 날개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표식이 달려있다.
아래 광장의 모습. 한쪽 벽만 막아놓은 이 건물은 각종 축제 때 무대로 사용된다 한다.
나무를 다루는 공장이라 하던데, 내가 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도박현장을 잡았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 능선에 하티반 리조트가 있다. 이 곳 지형은 자연스런 경기장관람석 정도 된다.
두 마을 모두 고풍스런 모습을 간직하고는 있지만, 지진에 대비할 필요가 있는 현 시점에서 새로운 건축물들이 전통양식을 벗어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또한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민속촌 건설을 통해 전통 건축양식을 보존하는 게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숙소로 돌아온 날이었다. 아픈 발바닥이 더 아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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