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이야기

고르카(Gorkha) - 샤(Shah)왕조의 출발지

무애행 2013. 2. 15. 22:45

룸비니에서 성지순례를 온 회사직원들과 짧은 만남끝에 아쉬운 작별을 하고 무글링에서 방을 잡았다. 무글링은 포카라-카트만두를 잇는 프리트비 고속도로의 중간점이지, 나라얀가트로 이어지는 도로가 갈라지는 지점으로서 인도에서 카트만두로 움직이는 물동량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중요한 운송루트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중심가는 넓은 도로를 끼고 있어 중량감있는 화물차들이 지나갈 때 소음이 만만치 않은 곳이다. 여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7시가 가까웠기 때문에 고르카쪽으로 더 움직이기 보다는 길 안쪽 방이면 그런대로 묵을만 하겠다 싶었는데 결론은 정말 시끄러운 밤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차라리 30여분 정도 더 포카라 방향으로 움직여서 고르카 입구인 아부까레리나에 묵는 것이 더 좋을 뻔 했다). 아침을 먹고 트리슐리강과 마르샹디 강이 만나는 지점까지 걸어서 이동한 후 무글링을 떠난다.

 

 

 

귤 집산지 역할을 하는가 보다.

 

 

아침 일찍부터 노점상(?)들이 문을 열었다.  kg에 80루피를 달라 해서 조금 샀다.

 

왼쪽은 나라얀가트 방향, 오른쪽은 다리를 건너 포카라로 가는 길.

  

 

난간 중간이 부숴진 곳은 철조망으로 대충 막아놨다. 

 

나라얀가트로 이어지는 길.

 

  

 

깍아지른 절벽이란 바로 이런 것.

 

마르샹디 강(왼쪽)과 트리슐리 강(오른쪽)의 합류점.

 

무글링을 떠나 근대 네팔의 영욕을 함께 한 샤(SHAH) 왕조의 본거지 고르카(Gorkha)를 찾았다. 샤 왕조는 '프리트비 나라얀 샤'왕이 카트만두를 정복한 1700년대 중반 이후 승승장구 하다가 100여년이 지나서 무신반란으로 왕으로서의 실권을 뺐긴 채(우리나라에서 고려사중 무신정권 시대를 연상하면 아주 비슷하다) 100여년을 세습 수상인 '라나'의 허락을 받아야만 바산타푸르에 있는 왕궁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허약한 존재로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1950년대 초반 네팔의회당을 지원한 인도의 도움으로 세습 수상가문의 권력을 무너뜨리고 실질적인 왕권을 되찾았지만, 이후 전 세계적으로 대세인 민주화 과정을 무리수를 둬 가며 저지한 끝에 네팔은 영원한 미개방국가요 미개발국가로 남게 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의 마오쩌뚱 이념을 기초로 한 네팔공산당의 무장투쟁으로 10여년간 내전을 겪고 나서야 소위 제헌의회란 것을 2008년에 구성할 수 있었다. 그 제헌의회가 만들라는 헌법은 제쳐두고 초당적으로 만들었던 거의 유일한 결의가 왕정폐지였고, 당시 왕(갸넨드라)은 이 결의를 존중한다는 짤막한 성명서를 발표하고서 네팔국왕으로서의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왕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고르카에 도착해서 버스정류장을 지나 박물관 앞까지 올라갔다. 이 지역에서 가장 그럴싸하게 보이는 박물관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으나, 들은 바(지난 해 12월 고사인쿤다 트레킹시 내 포터가 이 지역 출신이다)로는 전시물품이 카트만두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비해 더 나은 것도 없다 하니 건너뛸 생각으로 고르카 두르바르<더르바르>로 걸음을 옮긴다. 두르바르로 올라가는 길은 사진속의 여인이 서 있는 골목길로 가도 되고, 광장에서 동쪽에 있는 우체국쪽으로 가다가 올라가도 되는데<내려올 때는 이 코스를 택했다> 마침 두르바르로 간다는 네팔 젊은이들이 있어 이들과 함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르바르로 올라가는 길은 이처럼 가파르다. 나처럼 저 위에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지 않았다면, 아니 거기서 뭔가 정성을 드려야 자기들 앞길이 잘 풀린다는 믿음이 없다면 굳이 올라가 볼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중간중간 길을 잃지 말라고 방향표시가 되어 있다. 또 자신이 없으면 가던 길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이야기 해 줄 거다. 

 

 

 

잠시 오르다가 숨이 차서 뒤를 돌아본다. 가운데쯤에 보이는 능선을 따라 차길이 나 있고, 왼쪽 아래쪽에 큰 건물은 학교다. 

 

네팔 여인들은 매일 아침 이처럼 집 앞을 단장한다 한다. 황토흙에다 그들이 신성시하는 Cow dung을 섞어서 말이다.

 

지금은, '전 국왕' 신세지만 아직도 무시못할 정치적 파괴력을 지닌 '갸넨드라' 초상화다.

 

네팔의 전통적인 가옥구조는 1층에 부엌과 가축을 위한 공간이 있고, 2층에 생활공간이 있다. 간혹 3층짜리 집은 그 곳에 힌두신을 모시는 신당이 차려져 있다. 도로에 면한 가옥의 경우 도로변 1층은 모두 문을 달아 상업을 위한 공간으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까지 차가 올라왔는데.....길은 알 수 없다.

 

잠시 후, 눈 앞을 가로막는 '돌로 만든 벽돌로 쌓아올린 담장'이 나타난다. 저 위에 건축물이 있단 말이지. 왼쪽으로 가야 매표소가 있다(오른쪽은 고개 넘어 동네로 넘어가는 길과 연결된다).

 

모녀가 내 앞을 걷고 있는데, 딸래미 복장이 심상찮다. 저게 다 가죽제품이라면 두르바르 안에 들어갈 수 없을텐데. 아니나 다를까, 딸래미는 중간에 길을 멈추고 엄마로 보이는 여인만 매표소 앞까지 왔다가 내려갔다.

 

어딜 가든지 외국인은 봉이다. 그런데 입장료 차이보다 사진기 지참료 차이가 더 크다. 몸에 지닌 것은 모두 합성피혁이라고 한 후, 250루피(입장료 50, 사진기 200)를 주고 안으로 들어간다.

 

 

2500년전에 부처님께서 지붕을 잘 이은 집에는 빗물이 새들 염려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이 모양이다. 왕의 탄생지랍시고 매우 잘 관리한다는 건물이 이런 정도다.

 

 

처마 끝이 다 헐었다. 창문의 나무 조각은 솜씨가 꽤 좋아 보인다. 그런데 저 파란 색은?

 

 

 

 

아마도 여기가 '프리트비 나라얀 샤'가 태어났다고 하는 곳인가 보다. 난 처음에 이 곳을 방문하려고 했을 때 제법 규모가 큰(?) 두르바르를 예상했었는데, 건물 4개가 다다.

 

 

건물 이모저모

 

 

 

남쪽에서 보면 'ㄷ'자로 생긴 건물의 오른쪽 문이 열려있고, 그 안에서 연기가 새어 나온다. 들여다 봤더니 뭐 별거 없다. 아마도 관리인들이 사용하는 공간인 듯하다.

 

 

 

 

동쪽으로 난 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마당에 있는 이 돌은 이른바 '희생' 염소나 닭을 잡는 곳인가 보다.

 

여기서는 건물의 전모가 잘 보인다. 그리고 북쪽으로 설산의 모습도 일품이다.

 

 

 

 

건너편(그러니까 동쪽) 바위 위에 사람들이 보인다. 나중에 저기 올라갔더니 전망이 아주 좋다.

 

북쪽으로 샛문이 있길래 나가봤다.

 

샛문 닫음장치는 꽤 튼튼해 보인다.

 

 

 

 

 

 

 

 

 

 

이 건물은 힌두사제가 기거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오른쪽으로 쉬바신을 모신 공간이 있고, 그 안에 사제가 있었는데 사진촬영금지라 해서 한쪽 켠에 있는 돌로 만든 조형물만 찍었다. 

 

 

여긴 동굴안에 만든 신당으로 내려가는 문이다. 역시 신당은 사진촬영금지라 지붕만 찍었다.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선인장

 

본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 역시 'ㄷ'자로 되어 있고, 건물 처마를 받치는 곳에 새겨진 에로티카도 볼만하다.

 

 

 

 

 

 

 

 

 

 

'ㄷ'자 안쪽에는 에로티카대신 물고기인지(다리가 있으니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뭔지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다시 건물 외곽의 처마 모습이다.

 

 

 

 

이 건물 동쪽켠에 있는 작은 스투파(?)

 

 

 

 

동쪽 출구 아래로 힌두 신상이 보인다. 그 북쪽으로는 마을이 있고.

 

 

동쪽 출입구(입장은 되지 않는) 모습이다. 역시 기왓장이 문제다.

 

 

 

밖으로 나오니, 동네사람들이 서성이고 있고 한켠에는 비석으로 보이는 돌들이 세워져 있다.

 

 

 

Perfect Feet라고 한다.

 

 

 

한쪽은 '옴'자가, 다른 쪽은 길상 '만'자가 새겨져 있는 발바닥 조각.

 

 

건너편 두르바르는 이렇게 보인다.

 

설산들의 모습이다.

 

 

 

 

 

설산을 잘 보고 내려오니, 관리사무소 건물도 보이고.

 

이제 내려간다.

 

 

 

 

 

 

 

 

디딜방아처럼 보인다.

 

날 보고 제법 짖어대던 개를 한손으로 제압해 버린 여인.

 

 

 

 

멍석까지는 아니고, 볏짚으로 만든 (돗)자리 정도 되겠다.

 

 

민가들의 지붕 이음새를 살펴본다.

 

 

 

잘 된 집.

 

 

학교근처에 왔더니, 운동장에서는 여러 그룹의 학생들이 야외수업에 열중이다.

 

 

 

 

조촐한 기념품 가게

 

이 곳으로 내려왔다.

 

아주 잘 지어지고 잘 관리된 듯한 건물. 그러나 처마를 자세히 보면 물이 스며든 흔적이 역력하다.

 

 

박물관 앞까지 내려와서 기사에게 박물관 구경을 하지 않고 그냥 내려가겠다 하니, 자기는 들러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연못가의 힌두신당들을 살펴본다.

 

 

 

 

 

 

 

 

 

 

 

연못가에서 올려다 본 고르카 두르바르.

 

 

 

 

 

 

 

왜 사람들이 철조망 안에서 물건을 팔고 있나 했더니 저긴 군 부대 안이다.

 

뭐 지역 지도 등이 있나 해서 들어가 봤더니 10년전에 인쇄된 것을 보여준다. 웸사이트 주소만 확인하고 바로 나왔다.

 

 

한참을 내려와서 고르카를 되돌아 본다. 두르바르는 산 능선 위에 있는데, 그 이유는 적이 처들어 오는 것을 일찍 발견할 수 있고 또 마지막 방어기지 역할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거다.

 

 

 

고르카에서 멋진 경치를 봤으니, 이제는 반디푸르로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