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귀국전날(목요일)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었지만 내가 네팔을 떠나기 전 마지막 파티를 숙소에서 열었다. 내가 네팔에서 대충 이런사람들과 교유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줄 겸해서 날짜를 그리 잡았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집안에 남은 음식재료들이 사라지게 되므로 집사람과 함께 '어차피 할거면 일찍하고 짐을 싸자'라고 합의를 했다. 가사도우미에게는 염소수육을 주메뉴로 준비하라 이르고, 앞집의 도우미도 불러 좀 도와달라 했다(내 도우미와 가까운 사이이고, 전체적으로 음식솜씨가 좋다. 이 둘은 오후에 뭔 이야기를 하는지는 몰라도 숙소단지내 양지바른곳에 앉아 한시간쯤 속닥속닥하곤 한다. 마침 집주인이 한국출장중이어서 나중에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했다). 집 사람과 셋이서 오후내내 음식준비를 했는데, 염소수육은 염소갈비로 바뀌었고 새우튀김 등 새로운 메뉴가 몇가지 곁들여져 내 숙소를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잘 먹고 잘 놀다 갔다.
큰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간 다음 날(토요일), 내가 주로 자문을 해 주던 조사국(Research Department) 직원들과 함께 둘리켈로 소풍을 갔다. 불과 사흘전에 소풍을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들어서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하필 그 날 이 곳에 있는 한국골퍼들이 환송회를 해 준다고 했는데, 나도 못가게 되었다고 했더니 여기 공휴일인 월요일로 이틀을 미뤄서 멋진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전임자에게 무엇을 준비해 가면 좋겠냐고 했더니 Korean Cake와 Korean Vodka를 조금씩 가져가면 좋을 거라고 조언을 한다.
그래서 이 곳 카트만두에서 한국식 떡을 만들어 파는 '꾸시꾸시'에 전화를 걸어 인절미를 5kg 주문<집까지 배달을 해 주는 최소 주문단위. 처음에는 절편을 고려했으나 호텔의 전기문제로 토요일 오후에나 공급이 가능하다고 해서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로 결정. 인절미는 1kg에 1,000루피, 절편은 650루피>하고, 집에 있던 200ml짜리 소주가 혹시 이용에 불편할까 싶어 큰 페트병 소주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한병만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부서 총무에게 초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약간의 준비를 하겠노라 했더니, 자신들이 일체의 준비를 할 예정이므로 가져오더라도 조금만 가져오면 좋을 거라고 한다. 그런데 주문한 인절미를 받아보니 생각보다 양은 많고 한점당 크기는 작아서 소풍에 참석하는 1인당 두 점정도씩 돌아갈 수 있도록 짐을 싸고 소주도 댓병하나를 가방에 넣었다가 200ml짜리 다섯병만 가져가기로 했다. 나머지 떡은 같은 단지에 사는 한국인 가정에 돌리고 냉동실에도 조금 넣어서 얼렸다.
지난번 둘리켈에서 나모부다로 트레킹을 할 때 출발점에서 칼리신당(Kali Temple)까지 1,000개의 계단으로 된 오르막 길이 있었는데, 버스나 승용차가 그 곳까지 접근할 수 있는지는 몰랐다(10시 조금전에 도착). 직원들을 태운 버스가 아침 7시쯤 출발해서 야유회를 9시쯤 시작한다기에 나는 7시 반쯤 떠나면 되겠다 싶었는데, 직원 한 사람이 8시 반쯤 같이 떠나자 한다. 길 안내도 해줄겸 해서 말이다(네팔리 타임을 감안한 제의로 해석된다).
야유회 장소에서 본 칼리신당과 전망대 모습.
나모부다로 가는 고개에서 왼쪽으로 이 계단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야유회장소는 오른쪽이다.
둘리켈에서 올라오는 계단길. 오른쪽으로는 차가 다닐 수 있다.
소풍장소를 소개하면 아래 구글어쓰 지도와 같다. 카트만두에서 박타푸르를 지나 둘리켈로 간 다음(이 길이 티벳국경에 있는 코다리로 이어진다), 둘리켈 중심가에서 트레킹 시작점으로 이동해 1,000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된다. 그러나 이 날 우리는차를 타고 언덕 위에 있는 칼리신당까지 갔다.
작년 9월 중순 나모부다를 목표로 움직였을 때는 이 부근에 군부대가 있었고 군인들이 매일 아침 정성들여 단장을 했었는데, 지금은 군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나무를 보호하려는 것인지, 말려 죽이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살펴본다. 바로 아래 둘리켈 중심가가 보이고, 그 뒤 오른편으로 보이는 능선이 나가르꼿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길이다(중간쯤에 왼쪽으로 휘어진다). 그리고 저 멀리 설산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오전에는 조금 흐리다가 맑아지겠지 했는데, 막상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아침에 조금 쌀쌀한 듯 해서 따뜻하게 입고 가길 잘했다.
이 전망대와 가까운 곳은 다 야유회장소로 개발되었다. 도처에서 천막을 치고 음식을 만들고 음악이 흘러나오며,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춤을 추며 카드놀이를 즐기곤 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그들이 놀고 간 자리는 각종 쓰레기가 넘처난다.
전망대와 그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고 내려왔는데, 나보다 늦게 전망대에 갔던 직원들이 같이 구경을 다니자고 해서 모이는 중. 맨 뒤에 서있는 사람이 나랑 친하게 지내던 국내경제팀의 박사(아침에 나랑 같이 움직였다). 조사국의 여직원들이 다 모였다.
직원들과 함께 주변을 돌아본 다음 야유회 장소로 돌아왔다. 음식준비가 한창이다.
우리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또 다른 소풍객들.
드디어 음식은 물론 마실 것도 준비되었다. 칼스버그 맥주병 왼쪽에 보이는 노란 스티커가 내가 가지고 간 소주다.
붉은색 테두리 모자를 쓴 조사국장(Executive Director of Research Department)과 과장들(Directors). NRB는 직원을 Two-track으로 뽑는데, Assistant Director부터 'Officer 레벨'이고 이 직위의 신규채용조건은 석사학위 이상의 학력을 요구한다. Assistant Director-> Deputy Director-> Director(과장)-> Executive Director(국장)의 직위가 있고, 30년을 봉직하거나 58세가 되면 퇴직하도록 되어 있다 한다.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문서수발을 하거나 접객용 차를 만드는 등 업무보조를 하는 기능직원들이다.
저쪽에서 디스크쟈키가 음악을 준비하고,
드디어 춤꾼이 등장한다.
원래 저 불은 염소고기 바베큐를 위해 준비한 것인데, 날이 추우니 할 수 없이 사람들이 모여든다.
시간은 춤과 함께 흘러간다.
국장이 춤판에 들어오니,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진다. 내게는 '강남스타일' 춤을 춰 달라고 했는데 나는 말춤밖에 할 수 있는 동작이 없었다.
이 사람 혼자서 염소 바베큐를 준비했는데, 저거 구으랴, 고기를 꼬치에 끼우랴 하더니만 결국 한쪽은 타고 다른 쪽은 덜 익은 고기를 우리에게 주었다.
야유회 장소에 화장실이 없다. 누구든지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랄리구란스(가운데 'n'자가 들어 있는 경우 탈락시키는 경우가 많다).
20루피를 주고 한송이 샀다.
그런데 야유회 장소로 돌아왔더니, 메인 테이블에 랄리구라스가 가득하다.
이제는 개별적으로 노래 한자락 하는 시간이다.
날이 추워서 몸을 웅크린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한참 놀고 있을 무렵 NRB 총재가 야유회장을 방문했다.
다시 본부석이 정리되고, 이번에는 나도 본부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총재가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리는 모두 천막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도 겉옷을 입고 모자까지 쓴 채로 안으로 들어갔다.
왼쪽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뭘 하고 있을까?
총재가 계시건 뭐건 카드놀이에 열중이다.
다시 여흥시간이 시작된다. 중간중간에 말하는 사람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맞장구를 치며 웃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스개 소리를 하는 것 같다.
한동안 우리와 같이 앉아서 가벼운 음식을 들던 총재가 일어섰을 때 나도 같이 일어섰다. 오후 3시 조금 넘은 시간.
아래 사진은 음식을 준비하는 천막앞에서 목을 길게 빼고 한접시의 나눔을 고대하던 동네 사람들이다.
위 사진에서 내게 손을 흔드는 사람은 1년전 내가 네팔에 도착했을 때부터 나를 헌신적으로 도와주던 직원이다. Mr. Nepal,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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