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에서 차를 돌려 익산 미륵사지(거리 40Km)로 향한다. 이 곳도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곳.
요즘 차에 달려있는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기능들을 잘 활용하면, 거리 소요시간 등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어 여러지점을 방문하고 싶을 때 최적의 동선을 알려주니 정말 편리하다. 이런 IT기기들이 없었을 때는 커다란 지도책을 들고 자로 두 지점간 거리를 재고 소요시간도 대강 추정할 뿐이었는데, 지금은 두 지점간 정확한 거리는 물론 소요시간도 분단위까지 제공해 주니 세월의 변화를 직접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반면에 지도책을 거의 들추지 않게 되니 전체적인 동선을 한눈에 바라보던 안목이 이제는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
익산 미륵사지는 익산시내에서 북쪽으로 제법 떨어진 곳에 있다. 그냥 지도만 보고 찾아가려면 고생깨나 해야 할 지점이다. 벽골제를 떠난지 거의 한시간만에 미륵사지 주차장에 들어서니 멀리 우측으로 탑이 하나 보이고(동탑) 좌측으로는 서탑 해체복원을 위한 구조물이 높이 서 있다. 미륵사지 뒷편으로는 용화산이 우뚝 서 있는데, 산 중턱에 사자암*이던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암자도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익산시는 이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지(쌍분 포함)를 백제후기의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하고 또 이를 관광산업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삼고 싶어하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 사자사는 미륵산 정상부(해발 430m) 남측 7부능선의 움푹한 계곡에 위치하며 남측 앞쪽만 넓게 시야가 트여 있고 뒤쪽은 미륵산 정상부를 등지고 심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서편은 정상부와 미륵사지에서 올라오는 길로 연결되어 있으나 마주보는 큰 바위 2개가 마치 석벽처럼 가로 막고 있어 1명이 겨우 드나들 정도의 좁은 소로만 나 있다. 또한 동편은 깎아지른 큰 바위가 절벽을 이루어 가로막고 있다. 이러한 자연지세로 인해 암자 마당으로 진입한 후에야 겨우 사자암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아래 미륵사지와 관련된 참고 글의 원본은 이 곳에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6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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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절터.
개설
사적 제150호. 미륵사지는 마한(馬韓)의 옛 도읍지로 추정되기도 하는 금마면 용화산(龍華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다. 601년(백제 무왕 2)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무왕(武王)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로 유명한 사찰이다. 국보 제11호인 동양 최대 석탑인 미륵사지 서석탑과 보물 제236호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1974년 8월 원광대학교에서 실시한 발굴조사 때 동탑지(東塔址)도 발견되었다. 건물지(建物址)는 백제와 고구려의 유구(遺構)가 복합되어 있다.
역사적 변천
미륵사는 백제 제30대 무왕 때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백제 최대의 사찰로 언제 없어지게 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시대에 들어 17세기경에 폐사(廢寺)된 뒤 서탑(西塔) 및 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의 일부 석물만 남았으며, 사역(寺域)은 경작지와 민가로 변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왔다.
정부에서 중서부고도문화권개발사업(中西部古都文化圈開發事業)의 하나로 미륵사지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사찰의 정확한 규모와 아울러 가람배치의 성격과 구조를 밝혀내고, 발굴 결과 얻어진 자료를 통하여 유적을 정비·보존할 목적으로 1980년부터 1995년까지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발굴조사를 통해 사지의 전체적인 규모도 밝혀지고 2만여 점의 유물도 수습되었다.
한편, 미륵사지석탑(국보 11호)은 2001년 10월부터 해체·보수작업에 들어가 2009년 완료한 후 2014년 보구정비를 완료할 계획에 있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9년 1월 14일, 이탑의 탑신 1층 심주(중앙기둥)를 해체·조사하는 과정에서 미륵사지의 창건년대와 창건주를 기록한 사리봉안 기록판과 금제 사리 항아리 등 유물 500여 점을 발굴했다. 이를 통해 미륵사는 무왕 재위 40년인 서기 639년에 백제인 왕후의 발원으로 건립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금판 앞뒷면에 194자로 된 사리 봉안 기록판에는 시주자의 신분이 무왕의 왕후로, 좌평(백제의 최고 관직)인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사실이 새겨져 있다. 이는 백제 서동 왕자(무왕)가 향가 ‘서동요’를 신라에 퍼뜨려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 공주와 결혼했으며, 그 뒤 선화 공주가 미륵사를 건립했다는 「삼국유사」의 내용과는 다른 것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내용
발굴을 통해 확인된 가람배치를 보면 동탑(東塔)과 서탑(西塔)이 있고 그 중간에 목탑(木塔)이 있으며, 각 탑의 북편에 금당의 성격을 가진 건물이 하나씩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들 탑과 금당을 한 단위로 구분하는 회랑(回廊)이 있어 동쪽은 동원(東院), 서쪽은 서원(西院), 중앙은 중원(中院)이라는 개념의 삼원식(三院式) 가람형태임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가람배치는 동양 고대가람 연구에서 밝혀진 바 없는 전혀 새로운 형식의 특수한 가람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미륵사지 가람배치를 보면, 자북(磁北:자침이 가리키는 북쪽)에서 약 25°서쪽으로 기울어진 축선상(軸線上)에 중원을 배치하여 남에서부터 중문(中門), 좌우로 복도의 성격을 띤 남회랑(南回廊)·목탑·금당이 배치되어 있고, 주위는 동회랑(東回廊)·서회랑(西回廊)·북회랑(北回廊)으로 둘러져 있다.(이하 생략)
특징
탑 1기와 금당이 짝을 이뤄 3개의 원(院)으로 구성된 배치이면서, 중앙에는 목탑, 좌우 양쪽에는 석탑으로 주성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의의와 평가
미륵사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삼탑삼금당이 배치된 사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아울러 백제 무왕이 세운 곳으로서 최근 발굴된 사리기를 통해 창건연대가 정확히 밝혀져, 백제사와 불교미술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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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유물전시관 홈페이지 (http://www.mireuksaji.org)에서 인용한 글이다.
근본적으로 왜 미륵사를 부여에 짓지않고 금마에 지었는가? 또 마를 캐서 먹고살던 마동이 어떻게 왕이 될 수가 있었고 신라에 가서 선화공주를 맞을 수가 있었는가? 지명법사라는 인물은 기록에 의하면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것으로 되어 있는데 과연 실존한 인물이었고 실존했다면 마동과 관련이 깊은 그는 누구인가? 이런 의문들에 답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다만 마동이 금마지역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익산지방에는 마동이 홀어미와 살았다는 익산토성이 있고 그 산자락에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쌍릉이 있고 무왕이 천도했다는 왕궁평도 있다. 이런 점에서 무왕이 금마지역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으며 이를 근거로 금마 지방으로 백제가 천도를 했다는 주장도 있다.
백제가 금마로 도읍을 옮기고 금마에서 망했다는 주장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나오는 기록에 대한 검토에서도 근거를 제시한다. 즉 백제가 망할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흉조 중에 우물물이 핏 빛으로 변하는 것이 있는데 그 우물이 있는 지역이 금마지역이라는 것이다. 또 '六朝觀世音應驗記(육조관세음응험기)'라는 기록에 백제가 금마로 도읍을 옮겼다는 기록을 중요한 근거로 제시한다. 그리고 왕궁평의 주변에 옥룡천이라는 개천이 흐르고 주변지역이 古都里(고도리)라는 이름인 점 등도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백제가 부여에서 금마로 도읍을 옮겼다는 것을 입증하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으며 이에 절충적으로 금마로 도읍을 옮긴 것이 아니라 別都(별도)를 경영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도읍이든 별도든 간에 왕을 위한 궁궐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왕궁평에 대한 조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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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유물전시관 뒤로 보이는 산이 용화산이다. 주차장에서 유적지 경내로 들어오지 않고 담장을 따라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사자암에 닿을 수 있다. 난 시간도 많지 않고 다리도 아파 사자암에 다녀 오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 유물전시관 앞뜰에서 관람객들이 팽이치기 등을 하며 놀고 있다. 나도 팽이치기 한번 해 보려 했다가 채가 다 헤어져 팽이를 돌리기 어려운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
왼쪽은 서탑의 해체복원을 위한 구조물, 오른쪽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추정하여 복원(이 말이 맞나 모르겠다)해 놓은 동탑. 가운데에 당간지주(사실상 서탑 당간지주-왜 탑마다 당간지주를 세웠는지도 궁금하다)가 보인다.
유물전시관 들어가는 길에 볼썽 사납게 서 있는 석등 모형(기단부의 깨진 부분을 보라. 이건 석등이 아니라 시멘트등이라 해야 겠다-우리 유물을 전시하는 곳은 이런 세심한 부분에도 신경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
전시관 내부이다. 입구에 있는 축소모형도(배경의 사진속에는 용화산 사자암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
유물전시관을 한번 스윽 들러보고(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법인데, 이 날은 몸 컨디션 때문에 ㅠㅠ), 서탑 해체복원작업이 진행중인 곳으로 갔다. 마당에 가득 놓인 석재들.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 봤다. 발굴지 주변에 석재들이 놓여있고, 계단을 통해 난간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가까이에서 찍은 동탑복원 모습. 지금 서탑해체 복원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석재가 수습되었는데, 동탑에 사용되었던 석재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동탑과 서탑사이에서 바라본 용화산
서탑 당간지주
동탑 당간지주가 보인다. 그런데 이 주변에 많은 양의 석재가 놓여져 있다. 그럼 탑이 무너져 내리면서 석재가 저 곳까지 이동했단 이야기?
미륵사지 유적을 대충 들러보고, 익산의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거리 6Km).
유적전시관은 한산하다. 전시관 앞뜰에는 관람객들이 우리 어릴 때 놀던 놀이를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몇가지 준비를 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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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문화재청의 안내문이다. ※(왕궁리유적 → 익산 왕궁리 유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네요.(2011.07.28 고시)
소재지는 전북 익산시 왕궁면 산80-1외,금마면 동고도리 1109-8외
왕궁리성지 라고도 부르며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해지는 유적이다.
발굴조사한 결과, 이 유적은 적어도 세 시기(백제 후기∼통일신라 후기)를 지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석탑 동쪽으로 30m 지점에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 가마 2기를 발견했다. 특히 탑을 에워싼 주변의 구릉지를 중심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평지성으로 생각되는 성곽 유물을 찾았다.
성곽의 모습은 현재 발굴을 통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또한 성곽 안팎으로 폭이 약 1m정도로 평평한 돌을 깔아 만든 시설이 발견되어 성곽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지역 안에 있는 왕궁리 5층석탑(국보 제289호)과 절터의 배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유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직사각형의 성이 발견되어, 백제 후기의 익산 천도설이나 별도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음 블로그도 참조하면 익산시에서 열심히 선전하는 내용을 알 수 있다.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logId=5846030&userId=pichy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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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 비해 정말 방문객이 적었다.
유적지에서 수습된 기와편. 내 생각에 너무 초라한 것 같다. 왕궁의 지붕용이라면 좀 더 정교한 모습을 띄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님 그 당시의 기와제조기술이 저 정도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축소 모형을 통해 전체적인 윤곽을 살펴볼 수 있다.
5층 석탑이다. 이 곳은 전시관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올라오면 된다. 난 이 위치를 확인하느라 유물전시관 안내인에게 물어왔다. 그냥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찾기 어렵다.
이 곳도 주마간산식으로 훑어보고 견훤릉이라고 주장되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어느덧 하늘에는 구름이 많아지고 기온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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