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2018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_신안해저문화재 흑유자 특별대공개

무애행 2018. 8. 28. 22:58

2016년 9월초에 국립박물관에서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이란 특별전시를 관람한 적이 있었다.


당시 기록은

http://blog.daum.net/tigerahn1/504


2주전에 갔을 때 전시포스터를 보니, 신안해저문화재 흑유자 특별대공개 전시가 있다고 해서 다시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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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은 2016년에 신안선 발굴 40주년 기념 특별전을 개최하였으며, 『신안해저문화재 조사보고 총서』의 연차적 발간을 통해 신안해저문화재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2017년에 발간된 『신안해저문화재 조사보고 총서3-흑유자』 보고서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안선 발견 흑유자 800여 점 중 180점을 특별 공개합니다. 


흑유자의 생산지는 푸젠성(福建省)의 건요建窯, 차양요茶洋窯, 홍당요洪塘窯, 자조요磁竈窯, 장시성(江西省)의 길주요吉州窯, 칠리진요七里鎭窯, 허베이성(河北省)의 자주요磁州窯 등이며, 기종은 완, 접시, 호, 소호, 병, 소병, 뚜껑, 화분, 합으로 다양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흑유자의 생산지를 비롯하여 그릇의 쓰임새, 차와 흑유자의 관계, 찻그릇의 소비 성향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o 전시기간: 2018. 6. 4.(월) ~ 2019. 6. 2.(일)

  

o 전시장소: 상설전시관 3층 아시아관 신안해저문화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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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특별전시회 때는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관람했지만, 그 때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할 생각조차 못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왜 일본은 당시 고려가 아닌 중국에서 도자기를 수입하려 했을까?' 였는데, 이번 흑유자전 관람에서도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바로는, 중국인들조차 고려 청자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하고 있었다는데 왜 일본 무역선이 중국(당시에는 원나라) 본토에 가서 각종 도자기를 싣고 가려 했을까?


당시 고려가 일본인들이 필요로 하는 자기의 수량을 맞추기 어려워서 아예 공급제한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차문화를 너무나 열렬히 받아들인 일본이 그들의 도자기 수요를 차문화의 원류라고 여겼던 중국에서 직접 조달하는 게 여러모로 이익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동한(東漢) (25년~220년)이란 표현이 보인다. 나는 역사서에서 후한이라고 배웠는데. 이 기회에 중국역사 공부를 좀 해보자.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후한(後漢, 25년~220년)은 유방이 건국한 전한(前漢)이 (新, 9년 - 23년) 왕망에 의하여 멸망한 이후, 한 왕조의 일족인 광무제 유수가 한 왕조를 부흥시킨 나라로 수도를 낙양에 두었다. 전한(前漢, 기원전 206년~기원후 8년)은 고조 유방(劉邦)이 항우(項羽)와 대륙 쟁탈 뒤에 세운 왕조로서 (秦)에 이어서 중국을 두 번째로 통일한 왕조이다. 수도는 장안<지금의 서안>이었는데 그 위치가 후에 세워진 후한의 수도 낙양보다 서쪽에 있어서 서한(西漢)이라고도 한다.


동진(東晉)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후한 말기 조조(위나라) 손권(오나라) 유비(촉한)가 각기 천하를 삼분해서 다투다가, 220년 3월 조조가 사망하고 그해 12월에 조조의 아들 조비 후한 헌제로부터 황제의 자리를 빼았아 결국 위 문제가 되었다. 이로써 한나라는 멸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위나라도 신하였던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에게 나라를 빼았기면서 단명에 그쳤다. 촉과 오를 멸하고 통일왕조를 세운 (晉, 265년~317년)은 얼마가지 않아 내부분열로 힘을 잃게 되었고, 이 때 북방 유목민들이 남하하면서 세운 왕조에 의해 건국 52년 만에 멸망했다. 


동진(東晉, 317년~420년)은 중국의 (晉) 왕조가 유연(劉淵)의 전조(前趙)에게 멸망한 후, 사마예(司馬睿)에 의해 강남(江南)의 건업(建業-지금의 남경)에 세워진 (晉)의 망명 왕조이다. 낙양(265년~311년)과 장안(312년~317년)을 수도로 삼았던 통일왕조 진(서진이라고도 함)과 구별하여 동진이라고 부른다<개인적으로는 북진-남진으로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이후 북쪽에는 다섯갈래의 유목민<흉노족(匈奴族), 선비족(鮮卑族), 저족(氐族), 갈족(羯族), 강족(羌族)>이 들어와 열여섯개의 나라(이 중에는 한족이 세운 나라도 있음)를 세웠으므로 '5호 16국 시대(五胡十六國時代: 304년 ~ 439년)'라고 부른다.


진의 낭야왕(琅邪王)인 사마예는 건업(建業)으로 피난한 후 낭야의 호족 왕도(王導)의 힘을 빌려 동진을 건국했다. 약 100년간 11대에 걸쳐 지속되었고, 화북으로부터 피해 온 북쪽 세력과 강남 토착의 호족 세력과 협력으로 운영되었다. 제9대 효무제(孝武帝) 때 전진(前秦, 376년 북쪽을 통일)의 남하정복 전투로 위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383년 비수대전(淝水大戰)에서 승리하여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이때부터 농민 반란이 잦아지자, 무장 환현(桓玄)이 반란을 탄압한다는 명분하에 거병하여 집권하게 되었다. 


유유(劉裕)가 이를 진압하고 이어서 북벌까지 성공시키면서 권력을 장악한 뒤에, 아예 새로운 왕조를 세워 제위에 오르니 이로써 동진은 멸망하게 되었다. 유유가 새로 세운 나라의 이름은 (宋, 420년~479년)이며, 이는 남북조 시대에 강남에 세워진 남조(南朝)의 첫 왕조이다. 후대의 송나라와 구별하기 위하여 유송(宋)이라고도 부른다. 


당나라 이후에 통일왕조 송(宋, 960년 ~ 1279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에 밀려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고(1004년), 후에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년 건국)와 힘을 합쳐 요나라를 멸망(1121년)시켰다. 그러나 요나라 잔당과 함께 금나라에 대항하려다 수도 개봉을 내주고(1127년) 남쪽으로 쫒겨나 남송(수도 임안)이라 칭하다가 결국 원나라에 의해 멸망당한다(금나라는 1234년 멸망). 


북위(北魏, 386년~534년)가 북쪽을 통일(439년)한 이후부터 수나라가 천하를 다시 통일할 때(581년)까지는 '남북조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 남쪽의 한족 왕조는 그냥 지배 성씨만 달라지면서 나라이름을 달리 쓰게 된다(동진-송-제-양-진).


요즘 중화티비에서 즐겨보는 드라마중 봉수황은 남북조시대의 북위와 유송 이야기를, 그리고 랑야방은 남조의 양나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유리로 보호되고 있는 전시물들은 어쩔 수 없이 유리에 비친 잔상이 함께 찍힌다. 
















일본의 차 문화에 대한 전시도 보이는 데, 이쉽게도 난 아직 차 문화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일본 작가의 작품인데, 뭘 뜻하는 지 모르겠다.





같은 3층 전시실에 있는 '인도와 동남아시아관'에 들렀다.


여기서는 힌두교와 불교가 이 지역에 미친 영향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간다라 미술에 대해서도 말이다.













































담에는 고려자기를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