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요즘 나를 짓누르는 것 같다. 지금까지 대충 내 눈에 드는 것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또 그렇게 블로그에 써 왔는데, 사실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틀린 것도 많으리라. 이걸 어찌 다 수정할 수 있을까나? 그래도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 겠다.
엊그제 아주 짧은 일정으로 금융감독원에 근무하는 수재들이 금융위기에 대처한 한국의 대응조치 경험 등에 대해서 이 곳 NRB 직원들에게 직접 설명하는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빌미로 은행감독권을 한국은행에서 분리시켜 이른바 통합 감독원에 부여한지 10여년이 훌쩍 흘렀다.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세계의 흐름에 따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금융안정기능을 상당히 부여하는 법 개정이 있기도 했지만, 여전히 전체 금융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책임과 한계를 놓고 한국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참이다. 여기 네팔에서는 1990년대 우리를 보듯 중앙은행에 모든 금융회사(증권 및 보험 제외)에 대한 감독 및 검사권을 부여하고 예금보험기능 및 불법자금 추적기능까지 부여한 상태다. 최근 재무부가 에금보험기능에 대해 일부 의문을 제기하면서 기관간 기능조정이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파탄지역을 지도 한장 들고 걸어다니면서 이곳 저곳을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주말 오후에 할 수 있는 가장 보람찬 일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참기 어려운 냄새도 나고, 듣기 싫은 오토바이와 택시의 경음기 소리도 들어야 하고, 또 많은 먼지도 뒤집어 써야 하지만, 지나가는 꼬마가 영어로 안녕을 외치며, 또 간혹 있는 일이지만 주요 문화유적을 자발적으로 소개해주는 현지인을 만날 때 다시 없는 보람을 느끼곤 한다.
황금절(난 사실 사원이란 표현을 정말 싫어한다. 이는 한국의 언론계에서 자리잡은 일부 기독교인들이 천주교는 성당, 기독교는 교회, 기타 종교 시설은 다 싸잡아서 사원으로 표현한 데서 더더욱 그렇다. 사원대신 기도처란 말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데도 말이다) 안에서 바라본 가장 높은 곳이다. 여러가지 설명을 종합하자면 이 곳 카트만두 밸리에서 오래전부터 주류로 살아론 네와리족(지금은 외지인구의 급속한 유입으로 그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 곳 밸리에서 진행되는 거의 모든 축제는 네와리족의 축제라고 보면 된다)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이 반영된 형태라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층마다 건축양식에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숭례문을 이런 식으로 복원했다가는 주무장관은 물론이고 최소 대통령이 국민앞에 사과하고 총리는 옷을 벗어야 할 터인데, 여기는 그냥 그렇다.
동쪽으로 나가는 출입구에 '입장요금이 있습니다' 하고 알려주는 안내문(꾸마리 사진도 있다). 일본어까지 동원해서 가죽 신발은 벗고 들어가라 하는데, 아마도 이날 내가 신은 운동화는 합성피혁이었을 거라고... 2~3년 후면 중국어 안내판이 붙어 있을 게다.
골목길에서 바라본 입구 모습. 어느 쪽이 수컷일까요?
황금사원과 바로 붙어 있는 만주쉬리 절(한국어로는 문수보살을 모신 절이 되시겠다). 론리플래닛의 설명을 믿고 그냥 몇발자욱 옮기면 입구를 지나치기 십상이다.
여기서 서쪽으로 나가면 아까 황금절 들어오기 전에 봤던 곳(도서관이 있던 곳)으로 나가게 된다.
동쪽 골목으로 다시 나와 북쪽으로 잠시 걸어가면 이렇게 키가 큰 입석(立石)이 보이는데, 유감스럽게도 전깃줄인지 빨랫줄인지가 감겨 있다.
바로 앞에는 그럴싸한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뒤로 돌아가 보니 황량한 모습이다.
이제 쿰베쉬와르 사원(Kumbheshwar Temple)까지 왔다.
여기 사자는 흰색을 주로 사용해서 단장을 했다.
사원 바로 앞 우물터. 여기는 물이 완전히 말랐는데, 한 가운데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장식이 있다.
에구, 언제 내 차례가 오지?
안에 들어가니,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Cow가 아니라 Bull을 잘 모셔놓고 있다.
본당은 문이 잠겼는데, 남쪽 건물에는 힌두신자들이 경배를 하고 있다.
담장을 끼고 동쪽으로 가다가 조금 더 북쪽으로 걸으면 Ashok Stupa(North)가 나온다. 아직 동쪽 Stupa는 보지 못했으나
남쪽과 서쪽이 잔디로 덮혀 있는 것에 비해, 전체가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색다르다. 가장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듯 하다.
여기도 거석이 있기는 한데, 마당에 누어 있다.
저 공간은 순례자들을 위한 무료 숙소인듯
길 건너편에 절이 보인다. 이름은 Sunaya Shree Mishra Mahasthabir다. 내가 들어가려 하니 입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따라 들어오면서 설명을 해 준다. 한국에서 온 불자라고 했더니 아주 반긴다. 굉장히 오래 된 절이라고 한다.
수컷임을 요란하게 나타내고 있다.
왜 이렇게 모든 것에 쇠사슬을 둘렀냐고 물었더니, 도둑들이 훔쳐갈까봐 그런다고 한다. 본당의 문은 언제 여는가 했더니, 아침 일찍 오면 같이 기도할 수 있다고 한다.
남쪽(그러니까 더르바르 광장쪽)으로 나오니 아마도 북인도의 영향을 받았는가 싶은 크리슈나 사원이 보이는데, 여기는 돌에 새겨넣은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한쪽 귀퉁이에는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이란 안내석이 세로로 금이 간채 처량하게 서 있다.
맨 처음 파탄 더르바르 광장에 갔을 때 차를 마시던 곳이다. Swotha Tole에 있는 Rada Krishna Temple(뒷편)과 역시 인도양식의 영향이 엿보이는 Krishna Temple(앞)이다. 사진 왼쪽 구석에 자그마하게 보이는 것은 길 건너에 있는 Narayan Temple로 가루다상을 볼 수 있디.
여기서 나는 더르바르 광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쪽 골목(그러니까 황금 절에서 올라오는 길)을 이용해 대로로 나갔다.
Mani Mandapa Maha Vihar의 부처님은 참 특이하게 황금옷을 입으셨다.
이윽고 풀촉에서 더르바르 광장(남쪽 매표소)으로 이어지는 길을 건너 남쪽으로 조금 움직인다.
여기는 Ekhalakhu교차로. 돌에 새긴 솜씨가 뛰어난 비슈누 사원이 나타나고,
여기서 동쪽 골목길을 따라 나오니 절들이 보인다.
여기는 Bishokarma 절이다. 여기도 거북 등위에 석주를 세워 사자를 그 위에 모셔놨다.
다섯개의 Ashok Stupa중 동쪽 하나만 더 찾아보면 일단 파탄지역의 절은 대강 둘러보는 셈이 된다.
구경을 잘 하고 돌아오는 길에 휘발유를 넣으려고 장사진을 치고 있는 행렬을 만났다. 언제쯤 석유제품의 공급이 원활해 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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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월) 마침 파탄에서 저역 약속이 있어, 기사에게 마지막 남은 동쪽 스투파에 가 보자고 했더니 길을 모른단다. 지도에 나온대로 가자고(파탄의 풀촉에서 동쪽으로 두르바르광장을 지나 계속 직진) 하여, Ring Road를 건너 400~500미터쯤 가면 왼쪽에 스투파가 보인다.
여긴 마땅히 어느 쪽이 주된 기도처라고 하기가 좀 그렇다. 사방이 다 비슷비슷하다. 스투파 옆에는 힌두교도들이 세운 신전 성소가 있다. 비로소 파탄에 있다는 다섯 곳의 아쇼카 스투파를 다 둘러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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