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선거로 구성된 헌법제정 의회가 그 임기를 당초 2년에서 네번에 걸쳐 4년으로 늘렸음에도(1년, 3개월, 3개월, 6개월) 결국에는 새 헌법대강 마련에 합의하지 못함에 따라 대법원이 허용한 임기만료일인 5월 27일 자정을 기해 해산되었다. 분명하게 한 일이라고는 개원 첫날 왕정을 폐지하자라는 것 하난데, 그 이후 명목상의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아놓고 실제 권력은 수상이 갖는 과도정부로 운영이 되어 왔다. 그나마도 정파간 이해득실에 따라 수상이 네번 바뀌는 그래서 외국인 투자가가 볼 때 '도대체 나라가 맞기는 맞는거야? 이렇담 어떻게 20~30년앞을 바라보는 투자를 하지?'라는 생각을 충분히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5월 들어서는 새 헌법에 각기 유리한 주장이 포함되도록 하려는 각종 이해단체들의 번다요구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일 저녁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를 보내면서 '낼은 번다 있대?' 하는 묻는 게 일상사가 되었다. 번다가 있으면 운전기사는 아예 나타나질 않고(지 아버지 죽은 이후 13일이 지나서 출근한 날인가 그 다음날인가 전화기를 잃어버리고 아직도 새 전화기를 마련하지 않고 있어서, 무슨 일이 있을 때 정말 답답하다) , 가사도무미는 2시간 가량을 걸어서 출근을 하곤 했는데(3일 연속된 번다때 하루 빠졌다) 서로간에 정말 못할 짓이다.
* 현재 네팔은 헌법이 없는, 그래서 나라 이름도 어정쩡하게 그냥 네팔이라 하고 정부의 공식명칭도 Government of Nepal로 표기하고 있다. 왕정은 폐지되었지만 공화정인지 민주공화정인지, 정부형태도 중앙정부 하나일지 아니면 각 주마다 일정권한을 주는 연방제일지(또 몇개의 주를 설치할지 포함) 아직 정체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 번다에 대해서는 'Gorkha 지역 학교건물 신축지원현장 방문'편 참조
정치적으로는 어쨌거나, 지금 수상을 맡고 있는 바브람 바따라이(Baburam Bhattarai)가 강력히 밀어부치고 있는 정책이 '불법적으로 공유지를 점거한 건축물을 법대로 철거하는 것'인데 시중에 말은 많아도 이 곳에 도착해서 유일하게 '법이 지켜지는 현장'을 목격하는 셈이라 나는 나름대로 흐믓한 기분이다. 아래 사진은 그 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저항이 예상(?)되었던 바그마티 강변 둑방안쪽(카트만두와 파탄을 잇는 다리의 동쪽)에 지어졌던 불법 가옥 297채를 철거한 장면이다. 정부발표에 따르면 사전에 자기소유의 주택이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40여세대만 진짜 무주택자들로 나타나 그들에게는 합당한 이주비를 주고 퇴거를 시킨 다음 철거시한으로 정한 날 새벽(2012.5.9), 경찰을 동원해 퇴거를 거부하는 주민들을 모두 끌어낸 후 불도저로 가옥을 밀어 버렸다고 한다. 아직 일부 주민들이 항의농성을 하고 있지만, 정부의 태도는 완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법 집행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금요일 아침까지는 번다 때문에 움직이기 곤란했는데, 오후 3시가 되어 번다가 풀렸단다. 이날 약한 번다라고 해서 출근했던 기사에게 Kirtipur를 가자고 했다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고 해서 짧은 시간에 다녀올 만한 곳을 찾다가 파탄으로 갔다.
사진 오른쪽이 카트만두의 남쪽에 있는 파탄방면이다(다리 위에서 촬영). 정부 입장에서도 몬순이 다가오기 전에 정리를 해야 할 필요를 느꼈으리라.
성스럽게 여기는 바그마티 강물의 수준이 어떤지 금방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 사진은 구글 Earth에서 찾은 것이다(2012년 5월 현재). 다리 오른쪽으로 강둑 안에 상당히 많은 구조물이 보이고 그 사이에는 길도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알려지기로는 저 안에 학교도 있었다고 한다(사실 학교라고 해 봐야 한국의 학교와는 전혀 다르다. 교실 한두개를 가지고 학교를 차린 곳이 많아 위성사진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파탄 두더르바르 광장을 슬쩍 둘러보고, 곧바로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두르바르광장 입장료(외국인 500루피)와는 별도로 받는 입장료는 250루피이다. 그런데 정말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곳이다. 여기는 상업적인 용도가 아니라면 사진촬영이 허락되는 곳이다.
그러나 바로 아래 사진에서 보듯, 창문이 대부분 개방되어 있는 데다, 일부 유물들은 유리보호막 안에 있어 사진을 찍으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유리 또는 유물에 반사되는 경우가 많아 좋은 사진을 얻기 어려웠다.
입장권을 사서 한발짝 마당으로 내려가서 되돌아본 입구 모습이다.
정말 정성들여 조각을 한 것이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조각이 일부 떨어져 나간 것도 있지만 뭐 대수랴. 정답게 손을 잡고 있거나 심지어는 이성의 허벅지에 무릎을 올려놓은 모습도 보이고, 특히 여성의 가슴을 도드라지게 조각한 부분에서는 참 사실적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견문이 짧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인물들의 머리 모양만 본다면 마치 중국의 어디에 있는 느낌이다.
전체적인 모습이다. 가운데 부분에 기둥이 네조(둘씩)가 있는데, 처음 것은 마당에서 입구를 바라본 것( 위 조각은 모두 여기에서 촬영한 것이다), 두번째는 들어서면서 왼쪽, 그 다음 사진은 오른쪽 사진이다. 오른쪽은 두 곳과 다르게 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데 찾아보기 바란다.
1) 매표소가 있는 입구
2)매표소를 나오면 왼쪽
3) 오른쪽
마당에서 바라본 창문틀의 모습이다. 전체적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창살무늬가 조금씩 다르게 되어 있다.
2층 전시실 안에 관람객들이 보인다. 남자가 손을 짚은 바로 아래부분을 자세히 보면...
여기가 첫 마당에서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다.
마당 한가운데 있는 스투파(Keshav Narayan Templ로 소개)다. 기둥으로 쓰인 석재에 조각한 솜씨가 놀랄만하다. 이 마당을 중심으로 2층과 3층에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입구는 스투파 바로 뒤에 있다.
위 스투파 뒤에 박물관 입구가 있고, 건물안에 들어서면 계단을 통해 전시장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난 입구를 지나쳐 또 다른 마당으로 나왔다. 사진에 보이는 곳(마당으로 나오면 왼쪽)이 근현세사를 기록한 사진들이 전시된 공간이다.
이번 박물관 방문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Bull라고 하네요.
쉬바신의 상징중 하나인 링가.
1934년 대지진때 부서지지 않고 남은 스투파의 상륜부분
박물관 안에서 본 창문 모습
뭐 간단하게 가까이 가지 말란 뜻으로 줄 하나를 매 놨다. 난 저 비석에 쓰인 글을 하나도 알아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등 가운데 거북모양의 무늬를 하고 있는 두 마리의 코끼리가 새겨진 돌. 좌우는 깨져서 명확하지 않지만 다리 모양으로 봐서는 사자를 새겨 넣었던 것 같다.
계단을 통해 올라온 여기서부터는 박물관 Introduction 구간이다. 그리고 차례대로 쉬바신 비수뉴신 불교유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카트만두 두르바르에 있는 카스타만답 북쪽 모서리에 있던 것과 같은 모양. 그 때는 이게 뭐지 했었는데, 이젠 알 것 같다.
박물관은 크게 쉬바신영역, 비수뉴신 영역, 초기 힌두, 불교, 금속공예 영역으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사족일 것 같아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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