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화, 무궁화꽃이 활짝 핀 7월 30일 아침부터 찌는 듯한 날씨다.
올해가 유난히 덥다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고, 국민안전처에서 60세 이상 노약자는 닥치고 집에 있으라는 경고문자(돌아다니다가 열사병에 걸리면 안되니까)도 받았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산행다운 산행을 하지 못한지라 가볍게 짐을 싸서 집을 나선다.
집 사람은, 최근 혼자 다니다가 사고난 이야기를 하며 누구라도 같이 가면 어떻겠냐고 걱정어린 말을 건넨다. 그렇지만 같이 가자고 광고를 하더라도 여길 같이 갈 사람이 있을까나?
오늘은 배낭에 물 1.5리터를 넣고 막걸리 한통도 넣었으니, 가다가 목이 마르지는 않을 터(중간쯤에 있는 천보암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다).
09:10, 의정부 가능역에 내려 요기거리로 김밥 2줄을 사서 배낭에 넣고(10분 소요), 출발점인 가금교 3거리로 걸음을 옮긴다.
최근에 비가 제법 내려 중랑천에 흐르는 물줄기가 보기 좋다.
저 앞 오르막이 산행 시작점이다.
09:30 출발: 잠시 오르면 갈림길이 나타나는 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의정부시에서 붙여놓은 '소풍길' 표식이 나타난다.
오늘 걸으려 하는 구간은 지난 3월초에 비 때문에 포기했던 의정부 가금교~정주당산(일명 빡빡산, 양주시청 직원은 옛 문헌에 갈립산이라는 표기가 있으니 그 이름이 더 좋을 거라고 한다)~탁고개(내 어릴 때 부르던 이름, 지금은 어이없게도 '탑고개'란 표식이 있다)~천보암 뒤편 능선~축석고개로 넘어가는 길(백석이 고개라고 나오는 데 여기 지명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어하고개~이동교리다.
오늘은 기온만 높은 게 아니라 습도도 높다.
처음에는 석간수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시멘트로 물 나오는 곳을 고정시켰다. 수건에 물을 적셔 땀을 닦는다.
약수터옆 천막 안쪽에 낙서같은 것이 보여 살펴봤더니, 쓰레기 버리는 사람돠 담배피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다.
엊그제 내린 비로 바위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생겼다. 평소에는 이런 구경을 하긴 어려운 곳이다.
여기서 소풍길을 버리고 능선(소림사 방향)으로 올라간다.
마침 지나가던 촌로들에게, 저 꽃이 무슨 꽃이냐 했더니 외래종 같은데 이름은 모르겠다 하면서도 산에 너무 많이 퍼져 제거를 해야 한다고 한다.
능선위로 올라왔다.
하늘은 마치 소나기라도 퍼부을 듯 잔뜩 찌푸린 모습이다. 이러다간 오늘도 중간에 돌아서야 하나? 하는 걱정이 든다.
10:20, 소림사를 지나친다. 가금교 3거리에서 50분 걸렸다.
10:27, 소림사에서 7분 거리에 1보루가 있다.
막상 보루 주변에는 나무가 무성해서 조망이 좋지 않다.
사람 발길에 흙이 헤쳐지면서 몸체가 드러나고 비에 씻겨 다양한 무늬를 보여준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듯하다.
금오동쪽이 잘 보이는 지점에 멈췄더니 예전에 미군이 항공기를 위해 만들었다는 표식이 있는 바위다. 내려오던 사람이, '거기가 제일 좋은 휴식처입니다' 하면서 지나간다.
며칠전 자전거를 타고 부용천을 지나가다가 밑에서 직은 사진을 한장 추가한다.
10:50, 가금교 3거리에서 출발한지 한시간 20분만에 정주당산 정상에 닿았다.
정상 남쪽에는 거대한 통신탑이 있고, 정상 부근은 유적지 보호차원에서 보행자용 인공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던 분들<나보다 최소 다섯살은 더 먹으신 것 같다>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한장 남긴다(벌써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서로 어디까지 갈 거냐 묻다가, 나는 어하고개까지 갈 계획이었지만 힘들면 축석령에서 내려갈 수도 있다고 했더니, 자신들은 끝까지 가보련다고 한다(이 분들하고는 축석령 뒤편 능선까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는데, 결국 중도에 내려간 것 같다).
흠, 저 드럼통은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던고?
11:17, 탁고개에 닿았다. 이 고개는 내가 살던 고주내(古州內;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고지내라고 발음) 오리꼴에서 금오리로 넘어가는 길목이었고, 나도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한번 넘은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떡하니 '탑고개'란 표지를 달고 있다. 뭐 돌을 쌓아두어서 탑고개라고? 지금 보이는 돌들은 최근 10여년간에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던져놓은 것이 분명하다. 이런 지명 오기를 하루 빨리 고쳐야할 듯 한데....
[양주시 자료] ○ 탁고개·탑고개: 원학동에서 의정부시 금오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천보산에 있으며 옛날에 이 길을 이
용하던 사람들이 고개에 돌을 쌓아두었다 하여 일명 탑고개라고도 한다. 산152번지 부근이다.
11:46, 탁고개에서 약 30분간 가파른 길을 오르면 닿게 되는 6보루.
바로 이 밑으로 양주터널이 지나간다.
천보암 뒷편까지 와서 잠시 고향동네를 바라본다. 어릴 적에는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라 부른다)에서 여기까지 소풍을 오기도 했다.
골프장이 들어선 곳은 대부분 우리 집안 종손가의 땅이었고(1960년대에는 부분적으로 여길 개간해서 밭으로 쓰기도 했다), 대단위 택지개발로 인해 종가가 있는 몇천평의 땅만 외로운 섬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정말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내 어릴 적 항공사진은 구할 수 없지만, 구글어쓰로 10여년전과 비교해 보니 이제는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천보산 줄기다.
능선을 따라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걷다보니, 왼쪽 골프장쪽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다. 출입금지를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천보암 뒷편쯤에서 한북정맥이 내가 살던 마을을 휘감아 덕고개로 이어지는데, 지금은 각종 공사/개발로 구간구간을 잇는 길마져 끊어진 상황이다.
산에 와서 한잔 했으면, 쓰레기를 가져가지, 쯧쯧!
그래도 주변의 꽃과 나무는 아름답다.
쉴 수 있는 의자가 설치된 곳에 앉아서 김밥을 먹고 막걸리를 한잔 마신다.
언제쯤 축석령/백석이 고개가 나타나나 했는데, 막상 표지판은 없다.
또 지금 차가 다니는 축석령으로 내려가는 분기점에도 표지판은 없다.
13:23, 3보루라는 곳에 도착했다.
죽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던 노인네들은 더 이상 보이질 않는다. 아마 축석령쪽으로 내려간 듯.
한참을 걷다보니, 축석령 1.5km란 표시가 나타난다.
그리고 포천시에서 세운 푯말까지 합세해서 오히려 사람들을 더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기온도 높고 습한 날씨에 힘이 들어 천천히 걷는다.
축석령으로 빠지는 길을 놓쳤으니, 어쩔 수 없이 어하고개까지 가야할까 보다.
저기 어디메쯤 독바위가 있으련만, 시야가 좋질 않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정주당산마저 흐릿하게 보인다.
포천쪽으로는 새로 놓은 고속도로 공사구간이 보인다. 저 도로가 개통되면 몽베르cc까지 가는 길이 좀 수월해 지려나?
15:00, 드디어 어하터널이 보이고, 갈림길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임시로 폐쇄해 놓았다고?
양주자이 아파트쪽으로 내려가면 의정부까지 가는 길이 불편해서, 안내문에도 불구하고 어하고개로 내려가기로 했다.
15:20, 급경사 구간을 통과해 어하고개로 내려오는 데 성공했다.
20여분을 더 걸어 내려가 이동교리 정류장에서 의정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16:10, 의정부역 정류장에 도착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전철을 바꿔타고 집에 들어오니 내가 살아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오늘 산행은 정말 힘들었다. 산행시간은 여섯시간 반에 불과했고, 오르막 내리막도 크지 않았는데, 날씨가 문제라면 문제다.
'산과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년 1월 용마산-아차산(양호) (0) | 2017.01.19 |
---|---|
2016년 12월 삼각산 칼바위~대동문~백운봉 암문~영봉~우이동(양호산악회) (0) | 2016.12.27 |
2016년 4월 도봉산 신선대(양호산악회) (0) | 2016.07.31 |
정주당산(천보산맥의 의정부 끝자락) (0) | 2016.05.25 |
당현천-중랑천-부용천 걷기(2016년 1월) (0) | 2016.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