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산행지는 정주당산이다. 의정부 사람들은 '빡빡산'으로도 부르고, 일부 지도에서는 '천보산'이라고도 표시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이름은 아니다. 산행 초입은 가금교3거리인데, 전철 1호선 가능역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대원여객 종점에서는 더 가깝다).
일기예보가 나빠서 그런지 산행 참가자가 단 4명이다. 가능역에서 만나 길을 건너 점심거리로 빵과 만두 그리고 김밥 등을 사서 배낭에 넣는다.
참고로 토요일은 가능역에 도착하는 차의 배차 간격이 넓어지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산예정 지점은 어하고개에서 부인터 4거리 방향이다. 부인터 4거리에는 음식점도 여럿 있고, 의정부쪽으로 가는 버스도 자주 다니므로 교통이 편리하다.
산행 시작 지점, 가금교 3거리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우린 이제 시작하려 하는데,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네.
잠깐 올라가서 차가 다닐 수 있는 왼쪽 길(불암사/ 군부대)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난 길을 택해 산행을 시작한다.
작년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아직도 굴러다닌다.
약 한시간쯤 걸었을까? 능선위에 소림사가 보인다.
그런데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씩 듣기 시작한다.
소림사에서 바라본 의정부 방향. 구름이 짙어 시야가 좋지 않다.
소림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다가 천둥소리를 듣고 하산을 시작한다.
여기 원두막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
오늘 산행은 짧았지만 봄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니 기분이 좋아진다.
우비까지 갖춰입고 산을 내려간다.
청송삼계탕에 들러 닭볶음탕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헤어지기 전, 의정부역 앞에서 커피 한잔!
오늘 돌아다닌 경로.
아래는 동두천까지 이어지는 산줄기. 담엔 종주하고 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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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산(336.8M) 산행
빡빡산(336.8m)을 초딩친구들과 오른다. 6.25전쟁당시 얼마나 포격과 폭격을 당했던지 나무가 하나도 없어 이렇게 불렸다. 지금도 의정부의 나이 지긋한 사람을 붙잡고 뒷산 이름을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대답한다.
지도에는 천보산(天寶山)이라고 나와있다. 그러나 이는 모르는 소리. 진짜 천보산은 회암사 뒤의 것이다. 이것은 회암사를 창건한 나옹선사가, 인도 출신의 스승 지공선사의 "앞뒤 산세가 고향산천을 닮았다"는 말을 듣고 스승을 모시려고 절을 지으면서 뒷산에
인도의 그 산 이름을 의역(意譯)해 붙여 비롯한 것이다. 그런데 뭣도 모르는 국립지리원이 여기다 떠억 하니 천보산이라는 이름표를 달아놓고 더하여 천보산맥이라고까지 써놓았다.
원래는 정주당산이다. 정주당산은 정주당이라는 당집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병자호란때 청나라에서 공주를 요구하자 왕실은 서녀(庶女), 정주옹주를 보냈는데 청천강에서 투신자살하고 말았다. 그때 호종(扈從)하던 신하가 그녀의 족두리를 건져와 산마루 보루성자리에 당을 짓고 그녀의 넋을 기렸다한다.
갈립산(葛立山)이라는 이름도 있다. 1937년에 나온 <조선환여승람(朝鮮 輿勝覽)>, 요샛말로 하면 '수도권의 지리와 명승'에 나오는 바다. 옛날에는 칡이 많았나?
명칭 유래
조선 태조가 무악대사와 회암사(檜巖寺)를 찾았을 때 산세를 보려고 봉양리의 칠봉산[당시 어등산이라 했음]을 올랐다가 천보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20리쯤 되는 이 고개로 내려와서 어하고개라 하였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원바위고개라고 하는데, 이는 미군이 전략상 필요에 의해 표시한 ‘1Y[원와이]’를 그대로 읽으면서 변한 이름이다. 으악고개라고도 부른다. 어하고개는 양주시 삼숭동 삼가대에서 동쪽,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에서 서쪽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어하고개 [御下고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주당놀이의 유래
http://blog.daum.net/seul0928/13390986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서 조선의 여인들을 조공으로 바칠 것을 강요했고 1650년 조선 효종 원년에는 청나라 구왕이 조선의 공주에게 장가들겠다고 청혼을 해와 의정부에 살던 종실의 금림군 이개윤이 자기 딸을 보낼 것을 자청하여 조정에서는 그녀를 의순공주라 칭하고 청나라로 보내게 되었다.
의순공주가 집을 떠나 평안도 정주땅에 이르러 오랑캐 나라의 구왕에게 욕되게 사느니 죽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공주는 강물에 몸을 던졌다. 사람들이 시신이나마 거두려 했지만 찾지 못하고 족두리만 건져다 의정부시 금오동 천보산 아래에 장사를 지냈는데 이곳을 지금도 족두리 산소라 한다. 이 때 나라에서는 의순공주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큰당, 작은당, 각시당을 짓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의순공주의 어머니가 이곳 큰당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북쪽의 정주땅을 바라보며 비명에 간 어린 딸의 넋을 달랜 곳이라 하여 정주당이라 불려지고 있다.
해마다 4월 초순 좋은 날을 택하여 의순공주의 제를 지냈다. 정주당놀이는 우리 고장 민속놀이겸 대동제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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