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0일(목): 여주 영릉(조선조 세종대왕릉)
날이 화창하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집사람이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 해서 어디로 갈 까 하다가 문득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이 생각났다. 되집어 보니 나는 영릉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집사람도 아주 옛날에 한번 다녀왔다고). 여주에 가는 김에 신륵사에도 들르고, 맛있는 여주쌀밥을 먹고 돌아오면 좋을 것 같아 점심을 먹자마자 차에 올라탔다.
평일 낮 시간이라 그런지 집에서 여기 영릉입구 주차장까지 1시간 20분 걸렸다(입구에 새로 지은 세종대왕 기념관 - 안내문을 보니 내부에 있는 세종전의 유물을 이전하고 세종전은 허물 계획이라 함 - 에서 잠시 헤맨 것까지 포함).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시설을 만들었으면, 좀 세심하게 관리를 하지 이게 뭐람!
재실터? 아니 왕릉인데 재실이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내부에 재실이 있다. 그럼 여기는? 현재 위치로 재실을 옮기기 전, 건물이 있던 자리라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내역.
이 문 안에서 입장권(1인당 500원)을 검사한다.
문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세종대왕 입상이 보인다.
왼쪽 마당에는 세종조에 새로 발명하거나 개량된 각종 측정도구들의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다.
너희들, 지금 교육중이냐?
재실 안으로 들어갔다.
재실 내부의 담벼락에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여러 왕릉의 석물을 한꺼번에 시대별로 구분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조선왕릉의 석물 개요는 아래 문화재청 웹 페이지 참조.
http://royaltombs.cha.go.kr/html/HtmlPage.do?pg=/new/html/portal_05_06_03.jsp&mn=RT_05_06_03
재실 대문의 빗장.
대문, 문턱, 문고리, 문지방, 문설주 등등 부위별 이름을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한옥구조: 대문과 중문 등에 대해서는 아래 포스팅을 참조
http://blog.naver.com/jdit72/220945662103
능역으로 들어가는 훈민문
진달래동산 개방 안내가 보인다.
문 안쪽의 왼편에 있는 연못가에 군인들이 줄지어서 뭔가를 들여다 보고 있다.
뭘 보냐? 하면서 가까이 갔더니, 팔뚝만한 잉어들이 먹이를 얻어먹으려고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광경이 들어온다(근처에 잉어먹이 자판기가 있다). 이래서 물고기들도 비만증에 걸리는 거야!
여기 소나무들은 옆으로 누운 것들이 많아 보인다.
홍살문과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개울에 놓인 다리(금천교)를 지나 봉분쪽으로 들어갔다.
삼도와 정자각(제사는 여기서 지낸다고)
개설 조선 왕릉의 정자각은 능에서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중심 건물로 그 모양이 ‘丁’자와 같아 ‘정자각(丁字閣)’이라고 불렀다. 정자각은 봉분 아래에 있으며, 정자각 앞으로는 박석을 깐 삼도(三途)가 있고 삼도 맨 앞에는 홍살문이 놓인다.
정자각의 왼쪽에는 수라간(음식을 만드는 곳)이 있고, 오른쪽에는 능지기가 임시로 머무는 수복방이 있다.
수라간과 수복방
수라간은 제향이 있을 때 간단히 음식을 데우거나 조리를 하는 곳이고, 수복방은 능을 지키는 능지기가 임시로 머무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수라간은 정자각 서남쪽에, 수복방은 정자각 동남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통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건축하였다. 수라간과 수복방은 18세기 중반까지는 2칸 규모로 조성되었으나 이후부터는 3칸규모로 조성되었다.
봉분 있는 곳으로 올라갈 수 있게 계단을 설치하였다.
조금 전 재실 벽에서 본 사진에서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이것저것 아는 체를 해 본다.
집사람이 별의별 포즈를 다 취한다.
진달래 동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서 있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
우리는 여길 올라가지 않고 주변에 있는 꽃들을 그냥 눈으로 쳐다보기로 했다.
해가 사라지니 갑자기 쌀쌀한 기운이 돈다. 집사람은 마스크까지 꺼내 썼다.
주차장에 나오니 4시 20분쯤 되었다.
이제 다음 목적지인 신륵사로 갑시다.
세종대왕의 둘째 따님이 정의공주인데, 우리 집안으로 출가를 하셨다(내 20대 할아버지인 맹자 담자 할아버지와 결혼). 우리 집안에서는 명절(설, 추석) 차례와 두분의 기일에는 경기도 양주시 고지내에 있는 종가 사당에서 예를 올리고, 청명절사(청명일에 지냄)-중추절사(추석 전날에 지냄)는 묘역에서 후손들이 모여 지낸다.
안맹담(安孟聃)[1415~1462]은 본관이 죽산(竹山), 자는 덕수(德壽)이다. 1428년(세종 10) 세종의 둘째 딸 정의 공주(貞懿公主)와 결혼하여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 이어 연창군(延昌君)·연창위(延昌尉)로 개봉(改封)되었으며, 1455년(세조 1)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1462년 사망하였고, 양효(良孝)의 시호가 내려졌다. 안맹담은 초서(草書)에 능하였고, 활쏘기와 말 타기를 잘하였으며 음률(音律)·약물(藥物)에도 밝았다. 정의 공주는 세종과 소헌 왕후 심씨 사이에서 1415년에 8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으며, 총명하고 민첩하여 세종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1477년(성종 8) 별세하여 남편 옆에 안장되었다. 묘역은 서울 도봉구 안방학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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