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특별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오르세미술관 전시회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매표소 앞에 줄을 길게 섰다.
나도 입장권을 구입하고는,
실내 사진 촬영은 금지하고 있어 오르세미술관 특별 전시회 사진은 여기까지다. 많은 사람들이 해설자를 따라가며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이동속도가 빨라서 발목이 불편한 난 천천히 구경하기로 하고 해설자 무리에서 빠져 나왔다. 이날 전시회에는 어린 학생들도 많이 보였는데, 이들은 휴대폰을 이용하여 각각의 그림해설을 메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왜 메모를 하냐고 물어봤더니, 학교 숙제라고들 한다. 여기 입장료가 얼만데, 이걸 다 숙제로 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러한 미술사조를 '인상주의'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작은 반항심이 남아 있다. 즉시 와 닿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위의 팜플렛을 읽어보고 다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세한 설명을 찾아 보기로 한다. 아래 글은 공부를 위해 복사해 온 것인데, 혹시나 저작권 항의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뭐 본문에서 지식의 공유를 말했으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읽기 편하게 띄어쓰기와 줄바꿈을 하고 쉼표(,) 위치도 몇개 수정하였다.
http://www.cft.or.kr/sub/?num=449
인상주의(Impressionism)
- By CFT 이남희
Mar 11. 2013

- 인상주의(Impressi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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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술계의 비주류, 일종의 변종 화가 집단이었지만 100년이 흐른 뒤에도 대중의 관심을 뜨겁게 받고 있는 인상주의.
이토록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인상주의의 매력이 무엇인지,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에 대한 가치관과 신념은 무엇인지
Trend Backstage에서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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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Impressionism)는 파리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화가들에 의해 비롯된 19세기 미술운동이다. 인상주의 이전의 그림들은 신고전주의의 화풍과 규율에 맞춰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그림은 대부분 신화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19세기에는 신고전주의 화풍의 전통을 거부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는 흐름이 거세졌는데, 그 흐름의 중심에는 인상주의가 있었다.
인상주의는 쉽게 말해 인상깊었던 한 순간의 장면을 화폭에 옮기는 표현기법을 말한다. 화가는 피사체의 현실적인 묘사가 아닌 화가가 받은 인상깊은 그 순간을 재창조하기 위해 작업을 한다. 따라서 정확한 묘사와 완벽한 구도를 중요시했던 신고전주의의 작품들과 달리, 순간적이고 날렵하면서도 모호한 붓질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빛과 색채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은 캔버스를 들고 밖으로 나가 풍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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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일종의 변종 화가 집단으로 소위 비주류에 속했던 이들이 인상주의란 이름으로 불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다음과 같다. 1873년에 전통있는 파리의 미술전인 살롱(The Salon)에서 이 변종 화가 집단의 그림들이 대거 낙선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반발하여 살롱전에서 낙선한 화가들이 다음해인 1874년에 낙선전을 열었다. 여기에 모네(Monet)는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를 출품했다. 이 전시를 본 비평가 루이 르로이(Louis Leroy)가 신문 Charivari에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The Exhibition of the Impressionists)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썼다. 루이는 그 기사에서 모네의 그림이 단순한 스케치 작업이며 완성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비판하였으며, 특히 이 전시의 작품들이 자연의 '본질'은 그리지 못하고 피상적인 '인상'만을 그렸다고 조롱했다.
이후 인상주의자(Impressionist)란 단어는 재빠르게 대중의 호감을 얻었고, 작가 자신들도 그 단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의 대표적인 작가인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는 소설 작품(L'Oeuvre)에서 19세기 후반 프랑스 예술세계의 풍경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특히 그 책에서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이전의 원근법, 균형 잡힌 구도, 이상화된 인물, 명암 대조법 등을 무시하고, 색채와 빛을 통하여 찰나의 시각적 감각을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성난 젊은 혁명가'라는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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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들은 역사적인 주제 대신 살아있는 주제의 살아있는 장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제는 어디에나 존재하였고, 누구든지 쉽게 접할 수 있는 주제들이었다. 이처럼 어느곳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주제들을 쉽게 다룰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그 당시 물감의 개발과 상품화가 큰 몫을 차지한다. 튜브 물감의 발견은 실내를 벗어나 자연을 모델삼아 그림 그리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런 물감의 대량생산은 다양한 품질과 풍요로운 색채를 보장하였다.
인상주의자들은 색채의 역할에 보다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하나의 객체를 그리기 위해서는 그 객체를 최대한 잊도록 노력한다. 객체는 색채와 빛으로 구성된 덩어리로 여긴다. 인상주의자들은 주제보다 그 주제를 바라보는 시각,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 끝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중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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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들의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인상주의 화가들은 다음과 같은 테크닉을 활용하였다. 우선 그들은 보다 짧고 두꺼운 붓의 터치를 이용해서, 사물의 디테일보다는 본질을 묘사하고자 한다. 젖은 물감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젖은 물감을 적용해 부드러운 가장자리와 컬러의 혼합을 만들어 낸다. 또한 컬러는 가능하면 조금만 섞고 컬러들을 최대한 살려서 그림을 그리는데 이것은 생동감있는 표면 효과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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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는 자연광을 중시하며 그림자 표현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들은 그림자를 표현할 때 되도록이면 까만색 물감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보색 컬러들을 섞어서 그레이와 다크 톤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어두운 색은 극적이거나 공격적인 분위기 대신에 자연스러운 느낌을 연출한다. 인상주의자들은 종종 저녁에 그림을 그리면서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황혼의 그림자 효과들을 만들어 낸다. 위의 기법들을 역사상 많은 화가들이 종종 사용했지만 인상주의자들은 이 기법들을 다 함께 사용해서 그들의 작업에 대한 신념을 표현하였다.
인상주의는 인상주의, 신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세 가지의 시기로 나뉜다.
인상주의는 자연을 하나의 색채현상으로 보는 미술 사조이다. 이들은 색채가 사물의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성질이 아니라, 날씨나 빛의 반사작용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 여기었다. 그리고 빛과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속에서 자연을 묘사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따라서 인상주의 자들의 주요 관심은 '인상', 즉 짧은 순간에 화가가 시각적으로 지각한 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었다.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에드가 드가(Edgar De Gas),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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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첫번째: A bar at the Foli-Bergere, 두번째: Grand canal, 세번째: The railway)
사진출처: http://www.cs.trinity.edu/~kharty/Eduardo%20Manet.htm
++마네는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며 인상주의 화가들에 길을 열어주었다. 자신은 아카데미의 공인을 기다려 인상주의자들과 동일시 되는 것을 꺼렸으나 인상파 기법을 채용하여 제작하기도 하였다. 종래의 어두운 화면에 밝음을 도입하는 등 전통과 혁신을 연결하는 중개역을 수행하였다.
▷클로드 모네(좌: Garden at Giverny, 가운데: Camille Monet with her child, Impression Sunrise, 우: Poppies Blooming)
사진출처: http://rusart.ca/history/monet.html
++모네는 보이는 광경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보다는 자신이 느낀 순간의 느낌을 포착하여 화폭에 표현한다. 이처럼 모네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물감을 칠해 나가는 기법을 발전시키며 인상주의의 선두 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에드가 드가(좌: A woman seated beside a vase of flowers, 가운데: The dance class , 우: Dancers, pink and green )
사진 출처: http://www.metmuseum.org/toah/hd/dgsp/hd_dgsp.htm
신인상주의는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폴 시냐크(Paul Signac) 등을 중심으로 행해진 점묘주의 등의 이론과 수법 및 그 운동을 말한다. 인상파 화가들은 빛나는 빛을 그리려 했지만, 자연의 빛은 감산 혼합이고 색의 혼합은 섞을 수록 탁해지는 가산 혼합이기 때문에 원하는 밝은 색을 얻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인상파의 결점을 보완한 과학적인 인상주의가 바로 신인상주의인데, 흔히 색채 분석에 의한 점묘주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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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할주의라고도 불리는 신인상주의가 사용하는 기법은 순색만을 사용하되 일체 섞지 않으며 작은 점으로 찍어나가는 방법을 말한다. 이런 기법은 색조의 순도는 유지하면서 보는 이의 망막위에서 중간색이 형성되는 효과를 낳게 된다.
▷조르주 쇠라(좌: Le Grande Jatte , 가운데: Bathing at Asnieres) ▷폴 시나크(가운데: Woman arranging her hair, 우: The dining room)
사진 출처: http://progressingbackwardsunveiled.blogspot.kr/2011/07/art-of-paul-signac.html
http://www.chinaoilpaintinggallery.com/g-georges-seurat-c-58_73_771/bathing-at-asnieres-p-20656
후기 인상주의는 영국의 미술 평론가 로저 프라이(Roger Fry)가 1910~1911년 런던에서 개최한 전시회인 마네와 후기 인상주의전이란 표제에서 유래하였다. 폴 세잔(Paul Cezanne), 폴 고갱(Paul Guaguin),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로 대표되는 후기 인상주의는 인상주의의 빛에 대한 집착성과 객관성에 그리고 신인상주의의 지나친 과학성에 반발하여 형성되었다. 인상파에 속해 있지만 인상주의를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각 화가의 개성을 드러내어 표현하며 서로간의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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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후기 인상파의 화가들은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한 미술을 추구하였다. 폴 세잔은 사물의 본질적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인상주의를 박물관의 미술품처럼 견고하고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빈센트 반 고흐는 강렬한 색채로 내적 생명력을 표현하였고, 폴 고갱은 신비로운 색채를 사용하여 이성에서 벗어나 상상의 세계를 그려 상징주의를 탄생시켰다.
▷ 폴 세잔(좌: Mont Sainte-Victoire and the Viaduct of the Arc River Valley, 가운데: Still life with apples and a pot of primroses, 우: Antoine Dominique Sauveur Aubery)
사진 출처: http://www.metmuseum.org/toah/works-of-art/53.140.1
▷ 반 고흐(좌: Starry night, 가운데: Sunflowers, 오른쪽: The Starry night, over the Rone)
사진 출처: http://www.vangoghgallery.com/misc/bio.html
++빈센트 반 고흐는 1886년부터 1889년 죽을 때까지 약 30작품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다고 한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던 고흐는 다른 사람을 모델로 쓸 돈이 없어 자기 자신을 많이 그렸다. 고흐가 그린 자화상을 통해 네델란드 시절부터 파리시절에 이르는 그의 화풍의 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하는 것도 재미있다.
▷ 반 고흐 자화상 on YouTube
동영상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O5tKG39G6Qk#!
▷ 폴 고갱(좌: Two tahitian women, 가운데: Vincent van Gogh painting sun flowers, 우: Two women aka flowered hair)
사진 출처: http://www.paul-gauguin.net/
인상주의는 사상학적으로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얻어진다'라는 경험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따라서 대상을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려 하며, 옥외로 나아가 태양의 직사광선 아래 진동하는 자연의 찰나의 모습을 묘사하고자 하였다. 자연계의 모든 색은 빛과 대기에 의해 생겨나고 변화하므로 물체의 고유색은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사용하는 색채를 햇빛의 프리즘 분해에 의해 얻을 수 있는 7가지 색에 한정하려고 하였다.
비례나 균형 등의 기존의 법칙들을 거부하며 19세기 미술의 비주류였던 인상주의는 서양 근대 미술에서 중요한 한 획을 그었다. 인상주의는 피카소(Pablo Picasso)나 폴록(Paul Jackson Pollock), 마티스(Henri Matisse) 등 후대의 거장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며 현대 미술의 발전에 일조를 하였다. 특히 후기 인상주의의 화가인 세잔, 고흐, 고갱은 현대 추상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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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은 자연을 질서와 구성을 통해 화면 위에 재 창조하고자 복수 시점을 최초로 사용하였고, 이것은 다(多) 시점을 이용한 큐비즘(Cubism)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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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프랑스 아를르(Arles)시기에 선의 변형, 감정적 혼락, 주관적 표출을 표현한 회화작품을 그렸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이 독일 표현주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 이성에서 벗어나 상상의 세계를 그렸던 고갱은 장식, 주관, 관념적 성격의 미술 사조인 상징주의의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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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국컬러앤드패션트랜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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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회에 대한 두개의 촌평을 소개한다. 전시된 몇몇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http://www.insightofgscaltex.com/?p=7562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062142275&code=960202
오르세전시회를 보느라 막상 처음 박물관에 들어갈 때 보고자 했던 무량수불을 보지 못해, 6월 어느 토요일 다시 박물관을 찾았다.
중앙계단(어떻게 표현해야 하나?)에 앉아서 젊은 사람들의 연주도 두어곡 듣고, 전시실로 들어갔다.
지난 5월에 왔을 때와 전시 내용이 똑같다. 오늘의 목표는 '무량수불, 극락에서 만나다'다.
괘불앞 의자에 앉아 하릴없이 부처님을 바라보다가, 기념사진 한장을 찍는다.
이 것은 괘불을 보관하는 목제함이다.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좋다. 환희심에 30여분을 앉아 있었다.
경천사 10층석탑을 2층에서 한번 바라보고,
신라 왕관에도 한동안 눈길을 준다.
이 사진을 태국으로 돌아간 Nui에게 보내면서, 'You are deserved this crown'이라고 썼더니 고맙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옹관묘에 쓰인 토기들.
청동기 유품은 비파형 도검 몇점만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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