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지 않을 거라는, 그래서 구름도 거의 없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기사에게 차를 대라고 하였다. 일출은 5시 5분경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세시반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하늘엔 옅은 구름 뿐. 아싸! 식구들을 모두 깨워 사랑꼿(Sarangkot; 네팔말에서 'kot'는 주변 조망이 좋은 높은 곳이란 뜻이다. 'Sarang'은 한국말 '사랑'과 전혀 상관없는 말이고)으로 떠났다. 이른 새벽에 어두운 시내 거리를 걸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꽤 보였지만, 사랑꼿으로 올라가는 길엔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만이 새벽잠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
4시 40분, 기사가 내려준 곳에서 아침 등산을 시작한다. 포카라 시내가 해발 800정도이고, 차에서 내린 지점이 해발 1360근처이니 사랑꼿(해발 1570m)까지는 아직도 수직으로 200미터를 더 올라가야 한다. 작은 아들은 가면서 내내 툴툴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곳이기에 새벽부터 이렇게 서두르냐는 거다. 더우기 30분 이상 등산을 해야 한다니 그저 입술을 삐죽 내민다.
이 어둠속에 등로에 있는 마을 사람들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 내려오면서 보니 신당에 새벽 공헌을 하기 위해 준비한 것 같았다. 윗옷을 걸치지 않은 남자들이 여럿 보였다(오른쪽 사진).
다음에 또 오기 위해서는 목숨을 잘 부지하라는 건지...동쪽이 밝아온다(5:01). 등로에는 오직 우리 가족만이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고 있는데, 커피와 차를 파는 가게들이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나마스떼' 인사를 열번도 넘게 받은 것 같다.
그리곤 마차푸차레가 구름사이로 모습을 살짝 나타낸다. 힘내서 어서 올라가자!
등로와 차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좀 편하게 걷자 하며 차길을 따라 이리로 왔으나(지름길에 비해 엄청 길다), 더 이상 올라갈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발걸음을 돌려 마을 한가운데 나 있는 길로 접어든다(등로는 사진 왼쪽 건물 뒷편에 있다).
입장료를 받는 곳 바로 옆에 있는 신당이다. 신당앞의 난디(황소)는 살짝 고개를 돌린 상태다. 사진 왼쪽으로는 제법 큰 쉬바신전이 있다(그런데 여기도 바라히 신당과 마찬가지로 땅을 약간 파고 들어가서 신전을 만들었다).
정상부에 서자마자 와우! 여기에는 오직 우리 가족뿐이다.
그런데 막상 왼쪽에는 구름이 살짝 걸쳐 있다. 빨리 걷혀야 하는데.........
동쪽은 점점 밝아오고, 서쪽 끝 구름도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난다.
하릴없이 산 아래를 내려다 본다. 세티강과 그 옆을 흐르는 지류 사이 모습인데, 강물에 의한 침식이 얼마나 일어났는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다.
여긴 우리가 걸어 올라온 길(산등성이에 집들이 보이는 곳으로 길이 이어진다). 사진 아래에서 차길을 선책하는 바람에 헛발질을 조금 했다.
홍콩에서 왔다는 처자들에게 부탁해서 등반기념 가족사진을 한장 찍고,
해는 산위로 두둥실 떠오르는데
도대체 산 위의 구름은 언제 걷히냐고요?
여긴 사랑꼿에서 북쪽으로 난 능선(페디를 사이에 두고 담푸스와 마주보고 있는 나우단다까지 반나절짜리 트레킹도 가능하다)
동남쪽 능선(세계평화의 탑이 있는 곳; 구름 위에 작은 흰색 점으로 보임)으로 햇살이 퍼져 나간다.
우리를 포함해서 네팀, 10여명에 이르던 인파(?)가 이젠 5명으로 줄었다.
더 기다려도 웅장한 산이 모습을 나타낼 기미는 없고 해서 6:05경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길에 마주친 동식물들
그런데 페와호수 상류를 보니 가볼만 하겠다.
한참을 내려와서 다시 바라본 사랑꼿 정상부(6:21).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생겼다.
저 비행기에 탄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하는 순간 마차푸차레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6시 34분에 찍은 사진이다.
길가의 찻집에서 차 한잔을 시켜놓고 다시 기다리기로 한다. 점차 그 위용을 우리 앞에 드러내고 있는 안나푸르나 산군들. 아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기사에게도 올라와서 같이 보자고 했다.
다시 기념사진을 찍고, 어서 구름이 다 걷혀서 웅장한 산의 모습을 보게 되기를 기원했다.
그런데 마차푸차레의 오른쪽 산군들은 햇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
아침의 페와호수는 조용하기만 하다.
눈이 시리도록 안나푸르나의 설산을 감상했다. 이제 내려가자(사진속 오른쪽 좁은 길이 주차장에서 사랑꼿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그런데 차를 타고 하산길을 접어들자 마자, 아까보다 더 선명하게 설산들이 나타난다. 야호! 이 때가 7시 30분경이다. 약 한시간 가량을 찻집에서 설산구경을 하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오늘은 재수 좋은 날!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 그리고 히운출리 정상부 오른쪽 뒤로 보이는 산이 아마도 안나푸르나1봉일게다.
우리는 사랑꼿에서 설산을 가득 마음에 담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 식사후 아내와 작은 아이는 조금 쉬고 싶다 하기에 그러라고 하고는 호숫가로 나갔다. 눈이 부시다. 사랑꼿을 배경으로 이처럼 멋진 광경을 선사하다니....
호텔로 돌아와, 옥상에 올라갔다. 구름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사랑꼿에서는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해 하늘을 박차고 오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마차푸차레는 이렇게 구름에 휩싸여 가고 있었다.
설산들이 다 사라졌다. 10시 반경이다.
다음 날 새벽, 마차푸차레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옥상에 올라갔다. 그런데 오늘은 영 아니올시다다. 그래도 정상부근이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장면을 살짝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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