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이야기

네팔여행: 룸비니 8(카필바스투 등)

무애행 2012. 7. 23. 13:19

KOICA 설명회장을 나와 서쪽으로 향한다. 길은 평야지대를 관통해서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10시경의 농촌 모습은 한가한 게 아니라 양 방향으로 무언가를 하기 위해 넓지 않은 길을 부지런히 걷는 사람들로 오히려 바쁜 듯 보인다.

 

10시 조금 넘어 Taulihawa에 도착했다. 여기서 왼쪽(남쪽)으로 가면 부처님께서 성도후 처음으로 고향땅을 방문했을 때(카필라성을 떠난지 12년 뒤라 함) 아버지 정반왕께서 단을 쌓으셨다는 곳인 쿠단(Kudan) 유적지가 나오고, 북쪽으로 가면 당시 카필라성 도읍지였던 곳(지금은 Tilaurakot라 부름)이 나온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룸비니박물관을 둘러보지 못했다. 다 정신이 조금 산란한 탓이려니 한다. 시간상 다시 돌아갈 수는 없고(나중에 보니 다시 돌아갔어도 됐었다. 두번이나 후회막급이다), 우선 남쪽으로 간다.  

 

 

약 1Km쯤 가면 오른쪽(서쪽)으로 무슨 담장이 보이고, 그 뒤로 숲이 무성한 곳이 나타난다. 쿠단(Kudan)이다. 

 

 

세속의 왕과 전륜성왕을 뛰어넘는 부처님, 두 분의 부자상봉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대성석가사의 설명문에는 아직 발굴전 잔디로 덮혀있는 사진이 나오는데, 내가 갔을 때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다만 설명문이 큰 길가쪽에 있어 그 것을 찍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쇠로 만든 계단 좌우에 아름다운 벽돌조각이 보인다.

 

 

 

전체적인 축석의 모습. 이 많은 붉은 벽돌(사실 벽돌인지 자연석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을 어디서 구했을까?

 

 

맨 위로 올라가면 서쪽 방면에 평탄한 부분이 있고, 그 가운데에 이런 유물이 남아있다. 난 아쇼카 석주같은 돌기둥이 서 있었을텐데 생각중이었는데, 기사가 하는 말이 혹시 힌두교의 쉬바 링가를 만든 것 아니냐 한다. 고얀 것.

 

 

한쪽 구석에 서 있는 이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일단 기념사진을 하나 남기고, 자세히 살펴보니 벽돌의 옆면은 직각으로 고르게 만들었는데, 전체적인 모양새는 아주 자유스럽다. 정사각형도 아니고 직사각형도 아니고. 저걸 구워서 만들었다면, 일정한 모양을 갖췄을 게고, 자연석이라면 근처에 대규모 채석장이 있던지(그런데 사방팔방이 평지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정두께를 갖춘 돌을 저렇게 많이 채석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옆에는 부처님의 이모이시자 부처님을 어려서부터 지극정성으로 키워주신 파자파티(마하마제)왕비께서 부처님께 금란가사를 선물하셨다는 곳이다.

 

 

이 곳은, 이미 부처님이 되신 아버지를 만난 후 그 아들 라훌라존자가 공부하던 곳이라 한다.

 

 

염소도 한몫 거든다. 그냥 방목하는 것 같아도 목에는 각기 표식이 달려있다. 

 

 

 

여길 하늘에서 보면 아래와 같다. 

 

 

여기서 서쪽으로 3Km쯤 가면 고티하와(Gotihawa)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불(以前佛)이신 구류손불(Nirvana of Krachandra Buddha)의 탄생지로 여겨지는 곳에 역시 아쇼카대왕이 세웠다고 하는 석주가 하단 일부만 남아있다. 내가 본 사진에는 물이 없었는데, 가 봤더니 연못 한가운데 물에 잠겨 있었다. 몬순철이라 물이 많아져서 그런가 보다.

 

여기 큰 길가에 이정표가 있기는 했는데, 가다보면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확신이 서질 않아  기사가 현지인들에게 여러번 물어보며 찾아갔다.

 

 

원래 출입문 있던 곳은 철조망으로 막아놨다. 사진에 살짝 보이지만 동물의 배설물이 마당 한가운데 가득한 집에 사람들이 산다.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이 철조망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마차에 막혀 있어 보지 못하고 조금 더 갔었음).

 

 

 

 

 

 

 

이 주변도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냥 평지다. 부서진 석주 부분을 찾는게 어려워 보이지는 않을텐데(아마도 14~5세기에 무굴제국의 침입자들이 깊이 묻어버렸을 수도 있다). 

 

 

구글어스에서 보면 왼쪽 부근 사각형 속이 유적지다.  

 

 

아까 들렀던 Taulihawa에서 북쪽으로 3Km쯤 가면 부터님께서 출가전 29년을 사셨다는 카필라성터가 있다. 성터는 여기서 동쪽으로 200미터쯤 가면 나온다. 왼쪽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고 했는데, 남은 시간이 어쩔지 몰라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사실 더위도 한몫했다. 35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식구들이 모두 힘들어 했다.

 

 

 

북쪽으로는 강물이 흐른다.

 

 

 

어딘 카팔라바스투라고 하고, 또 어딘 카필바스투라고 한다. 여기선 철자 따져봐야 본전도 건지지 못하는 형편이라 나도 대충 넘어간다(오죽하면 룸비니 개발위원회에서 발간한 공식 안내자료에도 그렇게 나올까). 서문에서 출발하여 중앙부근 주거지까지만 다녀오기로 한다.

 

 

 

 

서문터. 아래는 현재 출입구 좌우에 보이는 성벽흔적이다.

 

 

 

 

중앙에 있는 주거지터. 왕성이라고 하기에는 발굴된 건물 유구가 너무 작아 보인다.

 

 

 

 

저기가 동문터다. 따라왔던 경비원이, '부처님께서 인도로 떠나신 문이다'라고 한다. 아, 예전엔 여기도 북인도의 일부분이었다니까 그러내(지금 네팔에서는 부처님 탄생지가 인도가 아니라 네팔이라는 점을 널리 광고하고 싶어한다).

 

 

 

엄마 따라 풀을 깎으러 온 어린이. 손에 쥔 낫이 앙증맞다.

 

 

이 청년들은 삼성갤럭시를 가지고 음악을 듣고 있다.

 

 

새로 자란 나무와 늙은 나무가 함께 사는 현장

 

 

부처님 탄생 당시를 재연했다는 곳.

 

 

 

다음 목적지는 여기에서 고속도로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옆에 있으며, 역시 과거불중 한분인 구나함모니불(Kanakmuni Buddha)의 탄생지로 아쇼카대왕이 세운 석주가 있는 곳이다(Niglihawa). 카필라성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약 8Km 북쪽)에 있다.

 

 

에전에 세운 것은 돌이 휘어진 것 같다. 새로 세운 것은 옆으로 누워있고.

 

 

 

 

여기가 석주 윗부분이다.

 

후대에 이 곳을 방문한 네팔 말라왕이 새겼다는 공작모습

 

 

 

산스크리트어로 '옴마니 반메훔'이라고 한다.

 

 

 

 

석주 오른쪽에는 구나함모니불을 모신 전각이 있으며, 그 뒤는 넓은 호수다.

 

 

 

지금부터는 룸비니 일원에서 찍은 풍경이다. 한마디로 하면 너른 평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논을 잘게도 쪼개놨다(쿠단 등 내가 올린 구글어스 사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니 이 넓은 평야지대에서 기계화 농업을 어떻게 도입하겠는가?

 

 

 

오늘은 소시장이 열리는가 보다. 머리에 뭔가를 둘러 쓴 사람들은 이슬람교도들이다.

 

 

 

 

 

 

농사용으로 보급한 트랙터가 많이 보인다.

 

 

난 보통소여!

 

 

 

 

 

 

 

풀을 자르는 기계다. 그 뒤에 보이는 담장에 소똥이 붙어 있는 게 분명하다.

 

 

 

많이도 몰고 가네 그려. 비켜달랬더니 우릴보고 포즈를 취한다.

 

 

 

이건 정말 처음봤다. 물소들이 연못속에서 나오고 있다.

새끼 돼지도 한마리 보인다. 집사람은 첨에 하마가 나오는줄 알았다고 한다.

 

 

쟁기의 모습. 한국 것과 비교하면 보습이 너무 작아 보인다.

 

 

여기선 Buff라고 부르는 물소떼. 그런데 엉덩이 부근의 뼈가 불쑥 올라와 있는게 특이하다.